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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그을린 점퍼·신분증·지갑 보며 오열한 유족들

입력
2025.01.02 17:53
수정
2025.01.02 21:2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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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닷새 만에 수거한 유류품 200여 점 인도
유류품 수거는 계속... 공항 옆 유휴부지 수색
화재 진화 과정에서 DNA 소실 "방법 찾겠다"

지난달 31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을 특수전사령부 전문재난구조부대가 수색하고 있다. 무안=최주연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을 특수전사령부 전문재난구조부대가 수색하고 있다. 무안=최주연 기자

"엄마 아빠 신발 한 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냄새 난다고 버리라고 한 걸 신고 갔잖아. 갔다 와서 버린다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닷새째인 2일 오후,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증을 손에 꼭 쥔 유족들이 전남 무안국제공항 3번 게이트 앞으로 모였다. 이날 희생자 유류품을 유족에게 인도하는 절차가 시작됐다. 20대 여대생으로 보이는 유족은 유류품이 보관된 공항 차고지로 향하기 전 대기 줄에서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아빠가 어떤 옷을 입고 집을 나섰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유족들 역시 절박한 표정으로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차고지로 향했다.

아예 차고지로 갈 수 없는 유족들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3번 게이트를 찾았지만 '유류품 소유자 확인 명단에 없다'는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돌아섰다. 경찰 관계자는 축 처져 있는 유족 어깨를 두드리며 "제가 어떻게 해서든, 뭐라도 꼭 찾아서, 꼭 연락드릴게요"라고 약속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닷새째인 2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사고 현장 주변에서 사고조사위원회가 여객기 엔진부 위로 흰 천을 덮고 있다. 사고현장 담장 밖으로는 특수부대가 유류품 수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무안=뉴시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닷새째인 2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사고 현장 주변에서 사고조사위원회가 여객기 엔진부 위로 흰 천을 덮고 있다. 사고현장 담장 밖으로는 특수부대가 유류품 수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무안=뉴시스

차고지에 다녀온 유족들은 '000님의 유류품' '000-1' '000-2'라고 적힌 갈색 상자를 소중히 품에 안은 채 멍한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한 승무원의 유족은 "원래는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그래도 두 개 찾았다"며 "여행 갈 때 챙겨가는 큰 가방인데, 우리 막내딸은 엄마랑 여행도 자주 다니는 착한 효녀 딸이었다"고 기억하며 또 고개를 떨궜다.

상자를 안고 돌아온 유족들의 임시 숙소(텐트)는 울음바다가 됐다. 상자 안엔 그을려 얼룩덜룩해진 연분홍색 점퍼, 반쯤 그을리고 녹아버린 신분증과 지갑이 있었다. 유족들은 그 옷을 끌어안고 "00아 00아" 목 놓아 울었다. "탄 냄새 때문에 우리 아이 체취가 하나도 안 느껴진다"고 통곡하기도 했다.

경찰과 소방, 특수전사령부 전문재난구조부대 등으로 구성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합동감식팀은 나흘간 수색을 벌여 1,000여 점의 유류품을 수거했다. 이 중 소유자가 확인된 물품 200여 점(희생자 141명 소유)만 이날 인계됐다. 감식팀은 현장에서 찾은 유류품을 창고에 하나하나 포장해 진열했다. 대부분 물품은 참사 당시 충격 탓에 불에 타거나 그을렸지만, 이름표가 붙어 있는 여행가방 등은 외부만 조금 깨지고 내부는 그나마 온전한 상태로 알려졌다.

지난달 31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을 방문한 유가족들이 참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무안=최주연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을 방문한 유가족들이 참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무안=최주연 기자

감식팀은 이날 사고기 꼬리 부분을 들어 올려 흙더미 속에 파묻힌 유류품과 시신 수색에 나섰고, 공항 옆 유휴 부지까지 살폈다. 수사에 필요한 물품을 제외한 나머지 유류품도 차례차례 인계할 예정이다. 그러나 충돌 이후 화재를 진화하며 물을 뿌려 유전자 정보(DNA)가 많이 씻겨 나간 유류품이 적잖은 것으로 파악됐다. 감식팀 관계자는 "유류품에 남아있는 DNA가 많지 않다"며 "유족 품으로 최대한 돌려드릴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참사 희생자들이 사고기 탑승 전 공항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도 곧 유족들에게 반환될 예정이다.

무안= 조소진 기자
무안= 김나연 기자
무안= 문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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