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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에 오른 활짝 웃는 웨딩사진… 분향소 찾은 시민들 울렸다

입력
2025.01.02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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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참사 추모객으로 붐빈 합동분향소
한 시간 이상 대기에도 차분하게 순서 기다려
"뉴스 볼 때마다 아이 생각나" 세월호 유족도
"잊지 않겠습니다" 청사 곳곳 수백 개 손편지

1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부근에서 올해 첫 해가 떠오르고 있다. 무안=연합뉴스

1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부근에서 올해 첫 해가 떠오르고 있다. 무안=연합뉴스


“제가 올해 쉰다섯인데, 55년 지기 친구를 잃었거든요. 올해 첫날엔 걔 얼굴을 (눈에) 담고 싶었어요. 잊지 않도록.”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1일 오전 9시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합동분향소 앞. 자꾸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A(55)씨는 힘겹게 입을 뗐다. 초등학교 동창 단체채팅방에 늘 있던 친구가 요즘 말이 없어 다들 이상히 여기던 차에 A씨는 그의 이름을 참사 희생자 명단에서 발견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봐 어느덧 결혼을 앞뒀던 친구의 딸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3시간 거리를 무작정 달려왔어요. 올해 첫 일출은 유독 맘 아프네요."

수많은 위패에 조문객 탄식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로 향하는 시민들의 줄이 청사 밖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안=연합뉴스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로 향하는 시민들의 줄이 청사 밖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안=연합뉴스

새해 첫날 합동분향소 앞은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조문을 기다리는 줄은 청사 밖을 에워쌀 정도로 길어져 오후 4시엔 1㎞에 달했다. 한 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국화꽃이나 손수건 등을 든 시민들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광주에서 세 살 딸과 함께 왔다는 이지원(35)씨 부부는 "가장 어린 희생자가 우리 아이와 동갑에 첫 해외여행이었다고 들었다"며 "두고두고 추억할, 들뜨고 행복한 경험이 됐을 텐데 돌아오지 못한 게 가슴 아프다"고 고개를 떨궜다. 전북 정읍 주민 최성곤(52)씨는 "친척 중 항공 승무원이 있어 사고가 남일 같지 않다"며 "더딘 장례 절차나 (원인) 조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속이 타들어 갈 유족분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대기는 아무 상관없다"고 했다.

앞서 대형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도 이곳을 찾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 아들과 이별한 B(53)씨는 "뉴스를 볼 때마다 떠난 아이들이 생각나 안산에서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2017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유족 허영주(48)씨도 "침통하시겠지만 마음 굳게 먹고 참사 원인을 파악하려는 의지를 놓으면 안 된다"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합동분향소에 들어선 시민들은 수많은 희생자 위패를 마주한 뒤 "이렇게 많이…"라고 탄식했다. 분향소엔 영정 사진을 급하게 구해온 듯 화소가 낮은 증명사진이나 머리를 단정히 쪽진 취업사진 등이 위패 옆에 있었다. 젊은 부부의 위패 사이엔 환히 웃고 있는 이들의 웨딩 사진과 여행지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찍은 사진이 놓여 조문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유족들의 새해 인사도 이어졌다. 의연한 얼굴로 조문을 마치고 나오던 50대 유족은 지인의 품에 안겨 "OO이 없는데 갑자기 새해라잖아, 나 이제 어떻게 살아"라며 끝내 무너져 내렸다. 양손에 어린 딸과 아들의 손을 잡은 젊은 여성은 기다리는 내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하고 작게 흐느꼈다.

"벌써 그리워요" 추모의 손편지 가득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난간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과 유족들의 손편지가 붙어있다. 무안=이유진·조소진 기자

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난간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민과 유족들의 손편지가 붙어있다. 무안=이유진·조소진 기자

공항 2층으로 올라가는 난간에는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추모의 쪽지 수백 장이 빼곡하게 붙었다. '즐거워야 할 여행의 끝이 너무 허무하게 되어버렸네요. 그곳에선 행복하시길' '가족 같고 친우 같고 이웃 같은 사랑하는 이여, 보고 싶습니다'라며 비통해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수원에서 온 고다인(38)씨는 "충돌 직전까지 조종대를 붙잡고 있었을 기장님과 부기장님이 떠올라 특히 안타까웠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편지를 남긴 한수훈(41)씨도 "사고 후 첫 휴일인 만큼 바로 달려왔다"며 "유족분들이 쓰실 생필품이 부족하다고 들어 마트에서 양말, 마스크, 방한용품을 사왔다. 뭐든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상을 떠난 소중한 이를 기리는 유족과 지인들의 편지도 눈에 띄었다. 'OO아 모든 것 다 잊고 행복했던 순간만 기억하고 가 있어' '화해하지 못하고 가서 후회된다. 늦었지만 많이 보고 싶었다' '언니야 다정히 부를 이름이 아프다. 어디에 있어? 언니가 있는 그곳이 평안했으면 좋겠어' '엄마 나 이제 고3이야. 이제 철 들고 정신도 차렸는데 못 보여주게 됐네.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리움과 슬픔이 깃든 편지들이 작게 팔랑거렸다.

무안= 이유진 기자
무안= 조소진 기자
무안= 문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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