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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지킨 국민 존경" 64년 만에 국회가 보낸 감사문

입력
2024.12.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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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불법계엄 당시 시민들 용기
"명문화 통해 역사에 기록하겠다"
민주당 의원 169명이 제안 참여
국회 운영위 거쳐 본회의서 의결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4일 새벽 서울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국회 통제 작전에 투입된 계엄군을 막아서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4일 새벽 서울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국회 통제 작전에 투입된 계엄군을 막아서고 있다. 뉴스1

국회 운영위원회가 12·3 불법계엄 사태 당시 계엄군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에게 보내는 감사문을 31일 의결했다. 국회가 대국민 감사문을 채택한 것은 1960년 4·19혁명 이후 64년 만이다.

운영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12·3 윤석열 비상계엄을 해제한 대한민국 국민께 드리는 감사문'을 의결했다. 지난 23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등 같은 당 의원 169명이 감사문 제안에 참여했다. 감사문은 일종의 결의안 성격으로 추후 본회의 의결이 필요하다. 국회의장 명의의 담화 형태가 아닌 결의안을 채택하는 이유는 명문화를 통해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서다.

감사문은 "대한민국 국회는 민주적 결단과 과감한 행동으로 대한민국을 수호한 우리 국민께 무한한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라고 시작한다. 이어 "3일 비상계엄의 밤부터 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의 밤까지 이어졌던 우리 국민의 결연한 저항과 평화적 항거는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의 용기를 잊지 않았다. 감사문은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계엄군의 장갑차량을 온몸으로 막고, 국회를 봉쇄한 경찰의 방패를 밀어내며, 국회를 침탈하는 계엄군의 총부리를 맨손으로 헤치고 민주주의의 길목을 지켜주었다"며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지경에도 새벽을 밝히며 국회를 지킨 국민은 단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계엄군으로 차출된 청년들에겐 위로를 전했다. 감사문은 "내란의 주모자들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었지만, 임무를 회피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했던 계엄군 병사들과 총칼로 무장했으면서도 끝내 국민을 해치지 않으려 했던 계엄군 병사들을 기억한다"며 "'죄송합니다'라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던 계엄군 병사의 안타까운 눈빛에서 이들 역시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임을 깨닫는다"라고 했다.

지난 24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계엄 국면에서의 성숙한 집회 문화도 자랑거리였다. 국회는 "5·18 (민주화 운동)의 주먹밥이 12·3의 '선결제(집회 현장 기부)'로 이어지고, 2016년 '촛불혁명'이 2024년 '빛의 혁명'으로 승화한 모습을 보았다"며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빛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과 이 시대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며 글을 마쳤다.

국회는 1960년 4월 27일에도 4·19혁명을 기리며 '전국 학도에게 보내는 감사문'을 의결한 적이 있다. 민주당은 당시 사례를 참고해 당론으로 감사문 채택을 추진했다.

국회 '12·3 비상계엄 해제 대국민 감사문' 전문

대한민국 국회는 민주적 결단과 과감한 행동으로 대한민국을 수호한 우리 국민께 무한한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의 밤부터 12월 14일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의 밤까지 이어졌던 우리 국민의 결연한 저항과 평화적 항거는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대통령 윤석열이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폭동을 일으켰을 때 우리 국민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대한민국을 구했습니다. 경찰과 계엄군이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사당을 침탈하자 주권자인 우리 국민은 주저 없이 국회 앞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계엄군의 장갑차량을 온몸으로 막고, 국회를 봉쇄한 경찰의 방패를 밀어내며, 국회를 침탈하는 계엄군의 총부리를 맨손으로 헤치고 민주주의의 길목을 지켜주었습니다.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지경에도 새벽을 밝히며 국회를 지킨 국민은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해제하도록 국회를 지켜내고, 탄핵소추 의결로 대통령 윤석열의 직무를 정지하며 내란세력을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의 필사적인 저항과 도움으로 국회는 재적 국회의원 300명 중 190명이 본회의에 출석하여,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 재석 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대통령 윤석열의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은 선포된 지 2시간 34분 만에 저지되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은 국회의 결의 즉시 국무회의를 소집하여 계엄을 해제해야 함에도 독선과 아집으로 시간을 끌다가 12월 4일 새벽 4시 27분 해제를 선언하였습니다. 그가 일으켰던 내란은 6시간 만에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으며, 12월 14일 국회에 의하여 내란의 범죄로 탄핵소추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스스로 역사의 빛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과 전세계는 5·18의 주먹밥이 12·3의 선결제로 이어지고, 2016년 촛불혁명이 2024년 빛의 혁명으로 승화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 들고나온 내게 가장 소중한 빛'은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는 빛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빛이었습니다. 평화와 사랑과 연대의 빛, 민주주의를 지키는 빛이었습니다. K-팝의 합창과 함께 어우러져 세대와 성별과 계층을 뛰어넘어 국민 모두가 튼튼하게 연대한 이 빛의 물결을 대한민국과 세계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1919년 3·1독립운동,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년 촛불혁명의 역사가 2024년 12월 내란에서 대한민국을 구했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역사를 구원했고, 과거의 죽음이 현재의 삶을 지속시킨 새 역사를 국민 스스로 써 내려갔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한밤 중의 내란사태로 인해 정신적 충격과 불안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국민께 깊은 위로를 전하며, 하루 빨리 충격과 불안에서 벗어나 건강과 일상을 회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위헌ㆍ위법한 비상계엄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국민에 대하여 그 실태를 조사하고 적절한 배상과 지원 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회는 내란의 주모자들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었지만, 임무를 회피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했던 계엄군 병사들과 총칼로 무장했으면서도 끝내 국민을 해치지 않으려 했던 계엄군 병사들을 기억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던 계엄군 병사의 안타까운 눈빛에서 이들 역시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임을 깨닫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으로 12·3 윤석열 내란사태의 전모를 밝히고 그 책임자들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임을 국민 앞에 다짐합니다. 비상계엄과 내란사태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과 함께 할 것입니다.
헌정질서가 위태로울 때마다 떨쳐 일어나 국헌을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우리 국민의 위대함과 슬기로움에 대한민국 국회는 깊이 감사하며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표합니다. 대한민국 국민과 이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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