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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사태에 침묵하는 스포츠계

입력
2025.0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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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 대행진’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 대행진’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증오는 미국 내에서 늘 존재했지만 트럼프는 그것을 다시 유행하게 만들었다.”

미국 프로농구(NBA) 대표스타 ‘킹’ 르브론 제임스가 2017년 8월 자신의 SNS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폭력 행위로 1명의 사망자와 2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두 편(인종차별 세력과 반대 세력)에 모두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적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NBA 스타 케빈 듀란트는 우승팀의 백악관 초청 행사에 불참했고, 북미미식축구(NFL) 로저 구델 커미셔너는 "대통령의 분열적인 발언은 리그와 우리 선수, 우리 게임에 대한 존중의 결여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미국 스포츠계의 비판 수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12·3 불법 계엄 사태와 탄핵으로 온 나라가 혼돈에 빠지면서 정치·경제 등 주요 분야를 넘어 예술계와 연예계에서도 개인 또는 연대 형태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스포츠계만은 조용하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사실 스포츠계는 ‘침묵의 카르텔’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곳이다. 2019년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미투'와 2020년 트라이애슬론 고 최숙현 선수의 가혹행위 사망사건으로 떠들썩했을 때에도 그들은 침묵했다.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2차관도 선임 당시 야당으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침묵’이 질타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는 가족과 유사한, 강한 결속력을 특징으로 하는 스포츠 공동체의 폐쇄성 때문일 수도 있고, 문제의 해결보다 공동체의 명예나 기득권자의 이해관계를 더 우선으로 고려해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포츠계는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거나, 심지어 가해자에게 넌지시 알려주어 무마시키고 2차 피해를 자초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특히 이것이 정치와 연결된다면 침묵은 더 깊어진다. 2016년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사건’ 당시 손연재, 박태환, 양학선 등 스포츠선수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곤욕을 치렀던 전례가 있어 정치 이슈와 엮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긴 했지만 이번 계엄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 스포츠계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구조적으로 한국 스포츠계는 재계나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대한체육회와 산하 종목별 단체들은 한 해 예산을 쥔 문체부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연임 시도를 두고 문체부가 사실상 전면전을 벌일 때도 체육회 산하 종목별 단체장들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 섣불리 나설 수 없는 구조다. 수장이 침묵하는데 휘하에 있는 직원이나 선수가 나서기 어렵다. 특급 스타가 아닌 이상 미운털이 박히면 곧바로 유니폼을 벗어야 할 수도 있다.

문체부 예산 지원을 받지 않는 프로 종목 단체들도 정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기업이 각 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보니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기업 입장에선 여야를 떠나 정치권 혹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정권에 관해 입을 잘못 놀리면 그 끝은 정해져 있다. 스포츠야말로 정치와는 무관한 분야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처음부터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종속 관계였다. 스포츠계가 계엄에 유구무언 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이유다.

김기중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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