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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눈물을 사랑으로

입력
2025.01.01 04:30
27면

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동백나무 사진 ⓒ송기엽

동백나무 사진 ⓒ송기엽

웃는 일조차 힘겨운 나날입니다. 이런 모진 시간들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동백(冬柏)꽃이지요. 이름에도 겨울을 담고 있습니다. 힘든 계절에 사람들에게 꽃을 보여주려고 동백나무를 심고 가꾸며 이 시기를 기다렸던 이들은 차마 꽃구경 오라는 말을 꺼내 놓기 어려워 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할까 싶습니다.

전 세계에는 수많은 동백 품종들이 만들어져 있지만, 선연하고도 단아한 우리 동백이 제게는 가장 고귀합니다. 동백꽃은 새의 힘을 빌려 수분을 하는 조매화(鳥媒花)라는 점을 비롯하여 특별한 점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꽃이 질 때 꽃잎이 시들어 흩날리지 않고 생생하고 고운 그 모습 그대로 툭툭 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송창식이 만들어 부른 동백숲으로 유명한 '선운사'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그 꽃 말이에요." 가사처럼 꽃다운 꽃 그대로 떨어지는 모습은 슬픈 눈물이 되어 마음을 건드립니다.

일본에서는 요즈음 우리가 겪는 일처럼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을 춘사(椿事)라고 한답니다. 일본에서는 춘(椿)이라는 한자가 동백나무를 뜻하는데 동백 꽃송이들이 붉은 꽃잎 그대로 떨어지는 모습을 불길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춘(椿)이라는 글자가 참죽나무를 뜻하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더욱이 요즘 젊은 이들은 동백숲의 꽃송이들을 보면, 떠나는 일을 바라보는 슬픔보다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느끼며 그 꽃송이들을 하트모양으로 모아 놓습니다. 동백숲 곳곳엔 이러저러한 사랑의 표징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눈물 대신 사랑을 담은 것이지요. 마치 지금 우리나라가 겪는 여러 어려움들을 국민들이 마음과 지혜를 모아 헤쳐가는 노력들처럼요.

동백나무 낙화 하트

동백나무 낙화 하트

동백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또 하나 있습니다. 예전 미국의 모리스 수목원에서 여러 나라의 동백을 모아 심었는데 어느 해 한파가 몰아닥친 겨울이 있었고 정원의 모든 동백들은 동사했지만 한국에서 온 동백나무만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동백나무의 북쪽 한계선에서 자라다 보니 내한성이 강한 유전적인 특성이 생긴 것이지요. 나무도 사람도 이 땅의 생명들은 강합니다.

눈물을 사랑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우리, 새해에 동백꽃이 나뭇가지에서 피고, 땅 위에 또다시 피고 그리고 마음에 피어나며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합니다.


이유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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