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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이 비극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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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은 "분열이 만든 재앙"(미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이었다. 2019년 부패 혐의로 기소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정치적 수명 연장을 위해 나라를 혼돈으로 몰고 간 결과 안보 태세에 공백이 생겼다는 얘기다.
당시 수세에 몰렸던 네타냐후는 전쟁 강경파와 손잡고 팔레스타인과 불필요한 충돌을 빚었다. 부패 혐의를 제기하는 수사기관과 반(反)정부 시위대를 '음해 세력'으로 몰기도 했다. 이 탓에 이스라엘은 매주 대규모 시위가 발발하고 군 핵심 전력인 예비군이 복무를 거부하는 대혼란이 발생했다. "혼란이 연쇄 작용을 일으켜 하마스 대비 태세를 약화시킬 것"이라던 2019년 전현직 군 장성들의 경고는 서늘하다.
12·3 불법계엄 사태가 국제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을 보며 가자전쟁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반국가세력' 운운하던 국가 원수가 터무니없는 사태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접점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외세(하마스)가 개입된 이·팔 상황과 달리, 불법계엄은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만든 국내 문제였다. 헌법 절차만 충실히 따르면 조속한 시일 내 혼란을 수습할 수도 있었다. 국회는 이미 불법계엄 해제를 의결했고, 탄핵 절차 및 내란죄 수사가 순항하면 대통령과 일부 측근이 만든 '해프닝'으로 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윤 대통령 탄핵 심리에 참여할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내란·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 추진에 "국정을 마비시키겠다는 속셈"(권성동 원내대표)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자초한 국정 혼란에 대한 비판을 '정치 공세'로 몰아가고 있다. 불법계엄으로 정권을 빼앗길 위기 상황에 처한 것이 탐탁지 않았나 보다.
정권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네타냐후와 이스라엘 여당도 마찬가지였다. 네타냐후가 이끄는 여당 리쿠드는 하마스 기습 초기 당황한 나머지 자세를 낮췄었다. 그러나 네타냐후가 가자지구와 레바논, 이란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전쟁을 일으키며 지지율이 회복되자 최근에는 '총리 방어 모드'로 전환할 태세다. '하마스 기습 허용'이라는 최악의 실책을 주변국 갈등 자극으로 무마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본 셈이다. 네타냐후와 리쿠드 입장에선 전쟁이 손해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사이 이스라엘 국가 이미지와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5만 명에 달하는 가자 주민도 죽었다. 극대화된 불안에 자극받은 이스라엘인들은 대외 강경책이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난해 10월의 경고를 잊은 듯하다. 정치평론가들은 이스라엘 정치 체제가 '신정 전체주의'에 위험할 정도로 근접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권력자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상식을 뒤엎고, 극단주의를 끌어안고, 혼란을 퍼뜨리면 사회 시스템의 붕괴는 불가피하다.
역사·문화가 다른 한국과 이스라엘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온당치 않을 수 있다. 21세기 한국에서 불법계엄은 시대착오적이었고, 시민들이 저항하며 이를 막아냈다. 그러나 정치가 참사를 책임지지 않고 버티면 비정상이 합리화될 수도 있음을 이스라엘 사례가 보여준다. 불확실성과 격동의 시대에 한국 정치가 그런 길을 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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