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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의 연금개혁에 누가 재를 뿌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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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의 노후대책인 국민연금 개혁은 난수표다. 역사가 증명한다. 국민연금 제도가 1988년 시작된 이후 연금개혁은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차 개혁 때 소득대체율(가입 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이 70%에서 60%로 줄었고, 수급연령은 60세에서 65세로 늦춰졌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2차 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28년에는 40%까지 낮추기로 했다.
이후 17년 동안 연금개혁은 메아리에 그쳤다. 현재의 구조로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았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연금개혁의 기회가 찾아왔어도 매번 재정 안정을 강조하는 쪽과 노후 소득 강화를 주장하는 진영의 갈등으로 개혁이 어렵다는 점만 부각됐다. 그러는 사이 1998년 소득의 9%로 인상된 연금보험료율은 27년째 이어지며 연금재정 고갈을 가속하고 있다.
연금개혁에 내재된 특수성도 개혁이 어려운 이유다. 제도를 뜯어고치는 게 개혁이니, 당연히 개혁을 하면 현재보다 나아져야 하지만 연금개혁은 그렇지 않다. 연금을 받아 노후를 보내야 하는 가입자 입장에서 필연적으로 손해를 뜻한다. 우리의 1, 2차 연금개혁이 그랬고, 해외 국가들의 연금개혁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연금의 속성을 파헤친 '낙타와 국민연금'의 저자이자 21대 국회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연금개혁은 사실상 연금 삭감"이라고 했다.
정치권은 표 떨어지는 연금개혁에 열성적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이후 역대 정부들은 인기 없는 연금개혁을 미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중점 추진 3대 개혁의 하나로 연금개혁을 제시했다. 국회에서 공론화도 진행돼 어느 때보다 개혁이 성공할 가능성이 엿보였다. 정부는 물론 전문가들은 선거가 없는 2024년을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으로 봤다.
그러다 21대 국회 폐원이 임박했던 올해 5월 말 연금개혁의 기회가 찾아왔다. 보험료율에는 13%로 여야 간 공감대가 형성됐고, 소득대체율을 놓고 이견을 빚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격적으로 44%를 내밀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母數)개혁부터 하자는 취지였는데, 대통령실은 거부했다. 구조개혁까지 아우르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초 발표한, 무려 21년 만의 정부 차원 단일 개혁안에는 이렇다 할 구조개혁안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연금개혁을 미룬 것은 야당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려는 속내로 해석된다. 그 안을 받았다면 연금개혁의 성과가 민주당, 특히 이 대표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테니. 이달 3일 비상계엄 포고령에 드러난, 대통령에게 거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감안하면 개연성이 충분하다.
정부는 연내에 개혁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길 바랐지만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로 사회를 미증유의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앞으로 이어질 탄핵 심판과 그로 인한 조기 대선 가능성, 대선에 함몰될 정국을 감안하면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은 또 허무하게 흘러갈 여지가 수두룩하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지난달 700만 명을 돌파했지만 보험료를 낼 인구는 급격히 줄고 있다. 하루에 쌓이는 적자만 약 1,500억 원이다. 개혁이 지연될수록 기금 고갈은 당겨지고, 청년세대가 짊어질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를 해결하겠다고 누구보다 강하게 연금개혁을 주장한 사람이 연금개혁에 재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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