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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조건부 상여금도 통상임금 포함해야"… 기업 부담 커질 듯

입력
2024.12.19 17:30
수정
2024.12.19 18:2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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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켜
"근로시간 대가성이 기준" 판례 바꿔
재계 부담 감안 선고일 이후부터 적용

서울 서초구 대법원. 박시몬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박시몬 기자

재직이나 근무일수 등 조건에 따라 지급하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통상임금의 성격을 소정근로시간에 대한 대가로 명확히 한 것이다. 11년 만에 대법원 판례가 변경되면서,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 전·현직 근로자가 각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에서 19일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 기준을 재정립한다"고 밝혔다.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일급·주급·월급·도급금 등을 말한다. 해고예고수당, 시간 외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육아휴직급여, 퇴직금 계산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흔히 통상임금으로 산입되는 급여가 많을수록 노동자에게 유리하고, 사측의 인건비 부담은 커진다.

문제가 된 두 사건은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한화생명보험은 지급일 기준 재직자에게만 주는 '재직조건부' 정기상여금이 문제였고, 현대차는 기준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자의 경우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근무일수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논란이 됐다.

대법원은 2013년 통상임금의 조건을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으로 제시하면서, 정기 지급이 확정된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만 조건에 따라 지급 여부가 갈리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고 "조건부 정기상여금도 상황에 따라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면서 판례 변경 필요성이 대두됐다. 한화생명보험 사건에서도 조건부 정기상여금 부분에서 1심은 임·직원이 패소했지만, 항소심에선 승소로 뒤집혔다.

대법원도 이날 기준 재정립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지급 여부가 사전에 확정된 금액이어야 한다'는 고정성 요소가 법령 어디에도 근거가 없어, 통상임금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시켜왔다고 봤다. 사용자가 부당하게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이 전제하는 근로 자체가 실근로가 아닌 '노사계약에 명시된 근로'라는 점에 주목해, 근로 제공에 따라 정기·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돈이라면 조건 여부·성취 가능성과 무관하게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한화생명보험의 경우, 재직 조건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는 건 부당하다고 봤다. 현대차의 정기상여금과 관련해서도, 지급 조건이 되는 근무일수가 소정근로일수 이내라서 예측 가능성이 있다며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다만 임금 체계의 근간이 되는 통상임금 기준이 갑자기 바뀔 경우 재계에 미치는 여파가 막대할 것을 우려해 새 법리는 현재 소송 중인 사건이 아니라면 선고일 이후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편입되면 연 6조8,000억 원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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