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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비평은 왜 존재할까… "좋은 질문은 사유의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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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명백히 문학은 사양 산업으로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4년의 겨울, 계간 문예지 ‘문학동네’ 창간호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됐다. 첫 문장에 걸맞게 창간호 특집도 황종연과 서영채, 류보선 문학평론가가 쓴 ‘문학, 절망 혹은 전망’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24년 겨울, 여전히 문학의 절망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하물며 비평은 수백 보 앞서 미리 백척간두에 서 있다. 시와 소설도 읽지 않는데, 이에 대한 비평을 읽으라는 건 지나친 요구로 보일 따름이다.
비평의 존재 이유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본 이들에게 계간 문학동네 30주년 기념 비평 앤솔러지 ‘크리티컬 포인트’는 답한다. “좋은 질문은 그 자체로 사유의 길라잡이가 되어준다.”(오은교 문학평론가)
책 ‘크리티컬 포인트’는 2019년 문학동네 100호 이후 발표된 비평·이론 중 “제각기 낡고 고루한 사유에 저항한 흔적”으로 꼽힌 12편을 묶어냈다.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대담집 ‘비평가의 임무’를 번역한 문강형준에 따르면 이글턴의 비평가상은 “결국 현재의 상태에 맞서 글로 싸우는 자”다. ‘크리티컬 포인트’에서도 평론가들은 미셸 푸코의 비평은 “통치 받지 않으려는 기술”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저항을 뿌리로 뻗어나간다.
오늘날 비평은 겹겹의 오해 혹은 몰이해와 함께한다고 이들은 항변한다. 대표적인 것이 비평이 곧 비판이라는 해석이다. 인아영 평론가는 책에서 오늘날 한국문학 비평을 향해 비판 기능을 상실한 주례사 비평인 동시에 과도하게 비판적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진단”이 존재한다고 짚는다. 그는 이를 “비판을 행위자들의 구체적인 실천이 아니라 주어진(주어지지 못한) 구조적인 전제로 이해”한 탓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비평이 “대상을 긍정적으로 요약, 소개, 상찬하거나 아니면 부정적으로 고발, 폭로, 비난하는 역할 둘 중 하나를 수행하는 행위로 단순화”됐다는 것이다.
인아영 평론가는 말한다. “문학비평에서 비판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쓰이는 시, 소설, 비평 텍스트들이 저마다 분투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식, 욕망,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현재와 맺고 있는 관계를 새롭게 해체, 재구성, 정립하는 일이다.”
문학비평 자체에 관한 성찰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삶과 허구를 섞은 오토픽션(자전소설) 장르, 출판시장의 에세이화, 성소수자, 기후 위기 등 한국문학계 현안과 조응하는 비평도 여럿이다.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오토픽션에 사적 대화를 무단으로 인용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불거진 ‘재현의 윤리’를 두고서는 비평마다 서로 다소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오은교 평론가는 책머리에서 “그 마름질되지 않는 이질성의 파열과 마찰을 모두 기꺼이 드러내겠다는 데에 이 책의 야심이 있다”고 귀띔한다.
책 ‘크리티컬 포인트’를 마무리하는 4부는 현재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인 ‘비인간, 동물, 공생자 이론’이다. 기후 소설이 영미권과 저널리즘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한국문학에서 동식물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고 있다. 근대의 구성 원리인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은 근대소설이 과학 바깥 상상의 영역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새로운 관계 모색에 나선 셈이다.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이 시대의 문학을 진단하려면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종을 중심에 두고 사유하기를 그”쳐야 한다고 말한다.
임태훈 문학평론가는 이어 기후 소설이 “새로운 비인간형의 사회를 향한 혁명적 정서를 생성하는 정치 예술”이 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비평은 이처럼 자칫 창작자 개인의 사유에 머무를 수 있는 문학이 동시대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길을 연다. 비평 없는 창작은 시대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는, 새로울 것 없는 지루한 반복이며 “이 지루한 미로에서 우리를 안내할 실”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오스카 와일드(책 ‘예술가로서의 비평가’)의 말이 지금도 유효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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