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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펙트체크] 제약사·민간보험 측에 건정심 추천 공문···의료 민영화 시도라고?

입력
2024.12.19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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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건정심 위원 추천 대상 일괄 확대
의료민영화로 볼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아
다만 건정심 구성에 신중할 필요는 있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송된 환자가 응급실에 입원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송된 환자가 응급실에 입원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시국선언 대회를 개최했다.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제약사와 재벌보험사를 포함하려 했다. 국민의 개인 건강정보를 민간보험사에 팔아넘기려 한다"는 규탄이 나왔다.

건정심은 건강보험료와 건강보험 정책 등을 심의·의결하는 정부 기구인데, 복지부가 제약사·보험사 단체에 건정심 위원 추천 공문을 보내면서 '의료 민영화 음모론'이 온라인 등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인지 살펴봤다.

복지부 "추천 대상 일괄 확대한 것뿐"

복지부는 9기 건정심을 구성하고 있는데, 추천 공문 대상을 크게 확대한 것은 사실이다. 건정심은 △가입자 8인(근로자단체, 사용자단체,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농어업인단체, 자영업자단체) △공급자 8인(의료계, 약업계) △공익대표 8인(복지부, 기획재정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문가) 등 24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 위원 추천을 받으려 양대노총 산하 조합원 3,000명 이상이면서 전국 단위인 모든 산별 노조에 공문을 보냈다. 과거 양대노총을 중심으로 추천을 받았는데 위원 추천 자격을 복지부가 임의로 정하는 게 공정한가라는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복지부 산하 장기요양위원회와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가 조합원 3,000명 이상 전국 단위 노조에 위원 추천 공문을 보내고 있다는 점도 참고했다.

이로 인해 삼성화재노조, 삼성생명보험노조,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 등이 포함됐다. 심지어 LG전자노조, KT노조, 롯데마트노조, 이마트노조, 전국영화산업노조, 대한가수노조 등 보건의료와 무관한 단체들도 공문을 받았다. 공급자 위원 몫으로는 의사·병원·간호사·치과의사·한의사 단체를 비롯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등에 보냈다.

복지부 관계자는 "추천 공문 발송한 것이 곧 해당 단체를 건정심에 포함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여러 단체들이 추천한 후보 중에 대표성과 의료 정책에 대한 이해도 및 전문성 등을 고려해 건정심 위원을 선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문 발송은 지난달 말이었고, 새 건정심 구성은 올해 말까지 마쳐야 한다. 복지부는 "의료계가 지적하는 의료 민영화 시도는 아니다"라며 "위원 구성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의료민영화'는 실체 없지만

한국에서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가 축소되고, 민간보험에 일부나 대부분을 맡기는 소위 '의료민영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법 개정이 아닌 '건정심 구성'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다만 건정심에 민간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 많이 포함된다면 건강보험 급여 적용 등에 있어서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근거 없다고 보긴 어렵다. 무상의료운동본부, 건강보험노조,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건정심을 대폭 물갈이해 바이오산업계와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국회에는 건정심 구성 중단을 촉구하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당장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공문을 받은 한 시민단체는 "보험사 노조 조합원도 엄연히 건강보험 가입자인데 공문을 받은 것만으로 의료 민영화라 해석하기는 무리"라며 "실제 위원 선정을 공정하게 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한 야당 의원실도 의료계에서 건정심 구성에 관해 논란이 일자 복지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해 들여다봤으나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공론화하지 않았다.

의원실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민주노총 등 노동계를 배척하고 적대시하다 보니 건정심에서도 근로자단체 추천 자리를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로 갈아 끼우려 하는 것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는 것 같다"며 "복지부에 위원 선정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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