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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날씨 시달리다…겨울 앞 하얗게 마른 크리스마스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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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행위를 ‘스포일러(스포)’라 합니다. 어쩌면 스포가 될지도 모를 결정적 이미지를 말머리 삼아 먼저 보여드릴까 합니다. 무슨 사연일지 추측하면서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한 장의 사진만으로 알 수 없었던 세상의 비하인드가 펼쳐집니다.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11월 말, 경북 예천의 한 농원에 12년생 구상나무가 죽어있다. 사시사철 청록빛을 한 채 주변에 시원한 향을 풍기던 생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삐쩍 마른 가지에 갈변한 잎만 남아있다. 3m 정도의 큰 키와 이리저리 뻗은 가지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장에 문제가 없었던 나무였음을 짐작게 한다.
아버지 때부터 경북 예천에서 구상나무를 키워온 농부 이우람씨는 최근 몇 년간 들쭉날쭉했던 ‘이상기후’를 구상나무 죽음의 주범으로 의심하고 있다. 작년 여름 장마가 극심할 땐 물길이 생겨서 뿌리가 잠긴 200여 그루가 죽었고, 올해는 이유 모를 병들로 떼로 죽어나갔다. 농부는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기후에 예민한 종이라 해도, 이렇게 이유 없이 한꺼번에 죽진 않는다”라며 “옷도 입지 못하고 선풍기, 에어컨도 틀 수 없는 나무는 뿌리내린 곳에서 그대로 이상기후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구상나무는 고유종도 개량종도 겨울이 중요하다. 개량종의 경우엔 크리스마스트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구상나무 고유종의 자생지는 한국이다. 1907년 제주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프랑스 선교사가 한라산에서 나무를 채집해 미국의 식물학자에게 전달하면서 서양에 처음 알려졌다. 현재 구상나무 개량종은 빽빽하지 않은 가지 덕에 크리스마스 조명 장식을 두르기 편하다는 이유로 트리로 자주 사용된다.
고유종 구상나무에 겨울철이란 생장기인 '봄'을 준비하는 시기다. 고산지대에 사는 구상나무는 본래 겨울철에 내린 눈에 의해 뿌리를 보호받다가 봄에 서서히 눈이 녹으면서 수분을 공급받는다. 그러나 2021년에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겨울철 강수량과 눈이 빨리 녹는 따뜻한 겨울 등으로 누적된 스트레스를 받은 결과 구상나무는 생장에 위협을 받고 있다.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 한국의 자생지에서는 가뭄, 태풍 등 자연재해의 타격을 받은 구상나무의 집단 고사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제주세계유산본부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한라산 구역의 구상나무 면적은 103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한라산 다음으로 구상나무 군락이 밀집한 지리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리산 산행 코스 중 로타리 산장에서 정상 천왕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주변을 위성사진으로 살펴보면 한 무더기의 고사목 군락이 하얗게 변해있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이상기후 또한 구상나무의 생육 스트레스를 누적시키고 있다. 올해엔 9월말까지 무더위가 이어진 가운데, 평년보다 일주일가량 늦은 11월 26일 첫눈이 관측됐다. 김진원 국립공원연구원 기후변화연구센터 연구원은 “올해 5월에 갑작스럽게 내린 폭설로 구상나무가 영향을 받진 않을지 모니터링을 면밀히 했었다”고 말했다.
또다시 돌아온 크리스마스트리의 계절에, 구상나무를 지키는 사람들은 설렘보다는 걱정을 드러내고 있다. 구상나무가 생장시기인 '봄'을 잘 나기 위해 겨울이 겨울답게 춥고, 또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눈이 내려야 하지만 그런 상황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지리산에 오르며 고사목 현황을 파악하는 서재철 녹색연합 위원은 “폭설과 가뭄이 반복되며 기후 패턴은 망가진 상태”라며 "개개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실천을 하고 국가기관은 건강한 구상나무 종자를 수집해 멸종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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