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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만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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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젊치인 에이전시 뉴웨이즈 이사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첫 감정은 황당함이었다. 퇴근을 했다가 택시를 타고 다시 출근하면서 친구들과 카톡했다. 황당함은 불안으로 바뀌고 있었다. 포고령이 도는데 내일부터 통금이 생기는 건지, 트위터나 유튜브에 떠도는 영상을 퍼나르며 장갑차랑 헬기가 떴다는데 어떤 상황인지 서로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기댈 수 있는 건 헌법 제77조 조문이었다. "국회가 모여서 해제해야 해." 서로를 안심시키며 유튜브로 본회의장 상황을 지켜봤다. 국회의장이 착석하고 안건 상정을 기다리는 동안 손에 땀이 났다. "챗지피티로 빨리 써오라고 ㅠㅠ." 실없는 농담에 피식했던 건 그나마 국회에 과반 이상이 모였단 안도감 덕분이었다.
급박한 상황이 지나고 비상계엄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고 섬뜩했던 건 지난밤의 라이브 기록들과 밝혀지는 정황들을 차근차근 돌아보면서다. 엄마가 강아지와 산책 사진을 보내며 말했다. "산책이 금지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
헌법이란 무엇이고,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얼마 전에 조그만 크기의 책자에 헌법 조문이 담긴 책을 선물로 받았다. 사실은 읽어볼 생각도 안 했는데, 위기 상황에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고, 수습책 사이에서 시비를 가리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은 비상계엄도 대통령의 권한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나. 결국 민주주의는 과거에 잘 다듬어져 결과로 남아 있는 제도가 아니라 시시각각 다듬어지는 것, 언제든 뺏길 수 있는 것, 그래서 잘 가꾸고 지켜야 하는 거였다. 이 생경함 때문인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도서 구독 앱에는 헌법 관련 책들이 추천 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온당하게 행동하고 이해하며 책임감을 나누려는 동료 시민들과 달리 나를 가장 무력하고 슬프게 만드는 건 헌법과 민주주의를 훼손한 비상계엄을 해프닝으로 치부하는 정치인들이다. 상황이 복잡해 보여도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내렸다. 명백한 위헌이다. 둘째, 대통령은 아직 직무 정지가 되지 않았다. 군 통수권을 포함한 헌법상의 권한이 그에게 있다. 셋째, 헌법상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 직무 정지를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탄핵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 상당수가 표결 자체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솔직히 말해 정치에 실망한 게 하루 이틀 일이겠나. 비상계엄이 벌어지기 전에도 국회는 정쟁으로 가득차 있었다. 정치를 다르게 만드는 일을 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도대체가 사람들이 갈수록 정치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계엄 발표를 듣고 국회 앞으로 몰려 갔는데 헌법 기관인 정치인이 명백한 위헌인 사태에 표결조차 하지 않고, 상처받은 국민에게 사과하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선거철이 되면 투표하라고 말했던 이들이 '설마 지금?'이라 부를 결정적 순간에 가치를 외면한 일. 이 장면에서 느낀 슬픔이나 절망감, 모욕감 등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 기억이 두고두고 우리 세대에게 강렬한 정치의 인상이 되리란 사실이다.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만든 이는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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