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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은 왜 무너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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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해제 이후에 나온 말들이 더 섬찟했다.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해프닝 같았지만, '겁만 주려고 그랬었다', '경고 메시지였다'는 발언들은 황당함을 넘어서는 공포였다. 겁주려고 군대를 동원했다는 실토는 고 오홍근 기자 테러를 연상시킨다. 1988년 8월의 일이니 36년 전의 일이다. 사회에 만연한 군사문화를 비판하는 기사를 자주 썼던, 그래서 군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던 기자를 현역 군인들이 습격했다. 출근길 기자의 허벅지를 대검으로 찔러 '겁만 주려고 했던' 사건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상부의 지시도 '한번 혼내줘라, 죽이지는 말고'였다고 한다. 군사법원은 범행동기가 개인 원한이 아니라, 군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되었다면서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번 건은 겁주려고 저지른 일이었고, 다친 의원이나 시민도 없으니 큰 죄는 아니라는 뱃심은 36년 전 사건과 묘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일반이 볼 때 이쯤되면 막가자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다. 상식을 세우는 게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해마다 인사철이면, 기업의 장들은 고민에 빠진다. 상식을 파괴하는 인사 욕심이 생긴다. 성과 있는 직원과 나태한 직원에 대한 신상필벌은 따지지 않고, 기수 파괴로 포장하는 유혹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대개 그런 인사는 사적 감정에 끌리는 정실인사가 되고 만다. 조직이 상식에 어긋나는 경우를 견제하기 위해서 기업에는 이사회를 둔다. 중앙에서 지방까지 행정은 의회에 의해서 견제를 받는다. 그렇게 해서 다수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선이 지켜진다. 과정에서 많은 다툼이 있지만, 선을 넘지 않으면 상식은 남게 된다. 행정을 감시하는 의회를 '범죄의 소굴'로 규정하고, 이틀 내에 복귀하지 않는 의료인력을 처단하겠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결단했다지만, 국민들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왔다.
상식을 지켜낸 것은 시민들이었다. 비상식적 명령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군인과 경찰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있었기에 의원들이 비상식을 막아낼 수 있었다. 계엄선포는 국무회의 의결이 아닌 심의사항임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새삼 군통수권자의 막강한 권력을 실감했다. 전시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행하는 것이 계엄이니 긴박함을 감안하여 의결 아닌 심의로 정했겠지만, 이번 사태는 지난 헌법 개정 당시 상상력이 더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지금 헌법은 1인당 소득 3,000달러 때 만든 것이다. 37년이 지나 이제는 G7을 넘보는(이번 일로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나라의 헌법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꽤 있다. 계엄선포 요건에서 보듯 권력분산에 대한 고민도 업데이트해야 할 것이다. 4·19나 5·18은 상식을 지키고자 했던 일이다. 부정선거도, 군인이 시민에게 총을 쏘는 것도 다 상식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집중된 권력은 비상식을 꿈꾸기 쉽다. 학연, 지연, 직연(職緣) 등 다양성이 배제된 그룹들도 비상식을 꿈꾸게 마련이다. 개헌 논의가 나올 것 같다. 이번에는 5년이나 4년 중임이냐에만 매몰되지 말고, 상식을 어떻게 지켜내는가를 먼저 고민했으면 좋겠다. 권력과 연줄의 집중을 피하고, 분산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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