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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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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패악질, 원흉, 척결….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거친 말이 쏟아지면서 한겨울 밤이 얼어붙었다. 붉은 얼굴로 “척결”을 내뱉을 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발라내듯 없애버린다고. 도대체 누구를. 곳곳에서 비난이 내리꽂혔다. “정신 나갔나 봐!” “술 취했나?” 성난 민심에 촛불이 타올랐다. 탄핵, 퇴진, 하야라는 말들이 새벽 추위보다 매섭게 거리로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나라 바깥 언론도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뻔뻔한 쿠데타” “민주주의 전복 시도”….
연말, 날씨도 몸도 마음도 어수선하다. 지난 주말 (호외보 제작을 위해) 출근하는 전철 안에서 “을씨년스럽다”는 한숨 섞인 소리를 들었다. 왠지 서글픈 이 말을, 이토록 추운 날, 머리가 하얀 어르신한테 듣다니. 어이가 없고 어처구니도 없다. '을씨년스럽다'는 '을씨년+스럽다' 형태다. 그러한 성질이 있다는 뜻의 ‘-스럽다’가 붙었으니, 을씨년의 어원을 알아봐야겠다.
을씨년은 1905년 '을사년(乙巳年)'이 바뀐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이해조의 신소설 ‘빈상셜’(1908년)에 나오는 ‘을사년시럽다’를 근거로 제시한다(‘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 ‘을사늑약’과 관계있다는 주장이다. 일제가 이완용 박제순 등을 내세워 강압적으로 늑약을 맺은 그해가 바로 을사년이다.
그럴싸하지만 뒤집는 설도 있다. '을씨년스럽다'는 1905년 이전부터 쓰이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조선 후기 학자 송남(松南) 조재삼(1808~1866)이 쓴 ‘송남잡지’에 나온 문장이 그 근거다. “세상에서 을사년은 흉하다고 두려워하는 까닭에 지금 생전 낙이 없는 것을 ‘을씨년스럽다’고 한다.”
뭐가 맞는지 알 순 없다. 다만 을사년 어느 해엔가 험한 일을 겪은 뒤 ‘을사년스럽다’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 널리 퍼졌고, '을씨년스럽다'로 변해 굳어진 듯하다. 북한에서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거나 매우 지긋지긋한 데가 있다는 뜻으로 ‘을씨년스럽다’를 쓴다. 지금 우리가 용산을 보는 바로 그 느낌일 게다.
‘-스럽다’를 붙이는 조어법이 유행한 적이 있다. 검사들이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자 ‘검사스럽다’라는 말이 돌았다. 비웃음이다. 슬슬 '윤석열스럽다'라는 말이 들린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책임질 생각조차 없다. 무식하고 오만하여 그릇된 일이 많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뜻이다. 나라 밖 사람들 입에도 오르내릴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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