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심각한 오판” 미국 정부, 尹 계엄 선포 공개 질타… 대중국 안보협력 약화 우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심각한 오판이었다(badly misjudged).”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표현은 외교관답지 않았다. 상대는 동맹국 정상이었다. 외교에서는 대화 상대방의 급(級)을 철저히 맞추는 게 기본이다. 더욱이 공개적인 질타였다. 캠벨 부장관은 4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애스펀연구소가 워싱턴에서 주최한 ‘애스펀안보포럼’(ASF)에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이 심하게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3일 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5시간 반 만에 해제한 일을 두고 내린 평가였다.
캠벨 부장관은 “계엄법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은 한국에서 깊고 부정적인 울림이 있다”고 부연했다. 전략적 실수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의 더 큰 문제는 ‘독재적·자의적 성격’에 있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그는 “사람들(한국인들)은 이것(계엄)이 불법적인(illegitimate) 과정임을 분명히 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짚었다.
‘가치 동맹’을 표방하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 윤 대통령의 행보는 충격적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도 (계엄 선포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사전에) 상의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처럼 TV를 통해 발표를 파악했다”며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우리의 깊은 우려를 야기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앞으로 계속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비공개적으로도 한국의 외교 상대방과 대화해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한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러시아·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에 맞서 민주주의 진영 네트워크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2021년 12월 출범시킨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미국 밖 주최를 처음 맡긴 나라다. 3차 회의가 올 3월 서울에서 열렸다. 그 정도로 믿은 나라의 대통령이 납득하기 힘든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배신감을 느낄 법하다.
계엄 선포를 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숀 세이벳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계엄 사태와 관련,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한국 국회에 제출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를 통해 “한국이 민주적인 회복력을 보여 주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윤 대통령 탄핵 추진을 환영한 것이다. 그는 “민주적 가치와 법치는 한미 동맹의 핵심”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직접 비판은 자제하고 있다. 캠벨 부장관의 지적도 계엄령의 부당성을 곧바로 겨냥하지는 않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교장관 회의 참석차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현지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국회에서 계엄령 거부 표결이 만장일치로 이뤄졌고 윤 대통령은 그에 따른 후속 조치(철회)를 했다”며 “정치적 의견 불일치는 법치에 따라 해소될 필요가 있다는 게 우리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대(對)중국 안보동맹 강화’라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의 숙원이던 한미일 3국 안보협력 토대 마련의 주역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을 밀어붙인 윤 대통령의 뚝심을 용기로 평가했다. 그런 만큼 이번 불법 계엄 사태로 인한 윤 대통령의 입지 약화는 ‘한일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안보 구상에 악재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될 경우 민주당이 집권할 공산이 크고 한국의 외교 정책도 바뀔 수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반일(反日) 성향이 강한 민주당이 기껏 묶어 놓은 한미일 결속을 다시 느슨하게 풀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