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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베낀 아류, '오레오'가 세계서 가장 잘나가는 과자 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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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과자는 무엇일까. 독일의 시장조사기관인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오레오'다. 2014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과자로 꼽혀왔으니, 가장 사랑받는 제품이라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매출도 매년 10억 달러 이상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오레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맛이며 취향도 있겠지만, 오레오가 코카인 같은 마약만큼 중독성이 있다는 설이 있다.
2013년 10월, 작은 연구 결과가 하나 발표됐다. 미국 코네티컷 칼리지 심리학과의 조지프 A. 슈로더 교수와 학생 3명이 진행한 것으로 오레오의 중독성을 검증하는 내용이었다. 쥐를 두 무리로 나눠 각각 심심한 쌀과자와 달고 기름기 많은 오레오를 둔 미로에 넣었다. 그랬더니 후자의 미로에서 쥐들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오레오를 먹은 쥐들이 마치 모르핀이나 코카인 같은 마약류를 투여한 것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료 심사도 거치지 않았으며 정식 발표 또한 이루어지지 않은 연구라 언론에선 우스개처럼 보도하고 넘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달고 기름기 많은 음식이 얼마나 중독성 있고 건강의 위협이 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주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할 연구는 아니다.
오레오는 평범한 과자라고 하기에 남다른 매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코코아 비스킷 혹은 쿠키 사이에 흰 퐁당(fondant, 설탕과 물로 만든 크림)이 채워진, 그러니까 샌드위치의 형식 덕분에 오레오는 단순한 과자를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대로 세 켜를 한꺼번에 씹어먹을 것인가, 아니면 뒤틀어 켜를 분리해 가운데의 달콤한 퐁당부터 먹을 것인가.
오레오를 먹는 방식은 우리의 탕수육 '부먹'과 '찍먹' 논쟁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열렬하게 기호가 갈리는 사안이다. 참고로 코네티컷 칼리지에서 실험에 참여시킨 쥐들은 퐁당을 더 좋아해 과자보다 먼저 먹었다고 밝혀졌다. 한편 2022년 4월, 미국 물리학협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인 '유체역학'은 오레오를 한가운데에서 정확하게 반으로 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힘을 주든, 반드시 한면의 코코아 비스킷에 퐁당이 몰아서 붙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진지한 물리학 연구마저 동원될 만큼 오레오의 상징성은 엄청나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을 하나 꼽자면 오레오는 2등이며 모방품이었다는 사실이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오레오는 예외인 것이다. 오레오는 무슨 사연으로 후발주자이자 모방품으로 세상에 등장해 10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과자'의 권세를 누리는 걸까.
그러니까 115년도 더 된 1908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과자점 '선샤인 비스킷츠'에서 '하이드록스(Hydrox)'라는 제품을 출시한다. 검은 코코아 비스킷 사이에 흰 퐁당이 끼워진 하이드록스는 그렇다, 오레오와 똑같은 과자였고 원조였다.
심지어 과자 겉면의 테두리며 복잡한 문양마저도 먼저 시도했지만 하이드록스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름이 문제였다. '순수함과 선함'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했고 하이드록스라는 이름은 물 분자의 수소(hydrogen)와 산소(oxygen)에서 따와 만든 조어였다. 이렇게 작명 뒷이야기를 들으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긴 들지만 왠지 락스에나 써야 할 이름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처럼 원조 하이드록스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하노버에서 새로운 과자 회사가 탄생한다. 1792년부터 장기 항해를 위한 건빵 '파일럿 브레드'를 만들어왔던 '피어슨 앤드 선스 베이커리'가 1889년 변호사 윌리엄 H. 무어에게 팔리고, 이후 인수와 합병을 여러 차례 거치며 40군데가 넘는 제과점이 한 브랜드의 지붕 아래 모이게 되었다.
규모에 걸맞게 '내셔널 비스킷 컴퍼니(National Biscuit Company)', 줄여 '나비스코(Nabisco)'라 불리는 초대형 과자 브랜드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나비스코는 4년 가까운 시간을 들여 1912년 3월 6일, 하이드록스의 모방품인 오레오(Oreo)를 발표한다. 하이드록스보다 입에 더 잘 붙을뿐더러 기억하기에도 훨씬 더 좋아 과자 이름으로 적합한 오레오의 작명을 놓고 여러 이야기가 갈린다.
일단 프랑스어로 '금'을 의미하는 '오르(Or)'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오레오를 담아 파는 양철 깡통이 황금색이었음을 근거로 삼는다. 한편 그리스어로 '좋은'이나 '매력적인'이라는 뜻의 '오레오(ωραίο)'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당시 나비스코사의 제품명이 연꽃(로투스) 등의 식물에서 따왔음을 감안하면 부를 상징하는 월계수(그리스어로 오레오다프네)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그저 발음이 좋아서 붙였을 이름일 가능성을 절대 배제할 수는 없는 오레오는 출시와 더불어 승승장구했다. 오죽하면 입지가 역전돼, 일단 이름부터 붙임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하이드록스가 오레오의 모방품이라고 다들 믿을 지경이었다. 나비스코의 소유주가 바뀌는 등 변화를 겪었지만, 오레오는 압도적인 인기 덕분에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비교적 안온하게 거쳐왔다.
가장 중요한 변화를 하나만 꼽자면 가운데 퐁당의 성분 조정이다. 정수라 할 수 있는 오레오 속 퐁당의 현재 버전은 식품과학자 샘 포셀로가 기초를 닦아놓은 것이다. 그는 나비스코에서 34년 장기근속하며 오레오와 직접 관련된 특허를 다섯 편이나 보유하고 있어 '미스터 오레오'라 불리기도 한다. 다만 그의 레시피는 1997년과 2006년, 각각 코셔(유대인 식품 규율)와 트랜스 지방 제거를 위해 두 번 변화를 겪기는 했다.
오레오가 이처럼 후발주자이자 2등이면서도 백 년 넘게 승승장구한 반면 하이드록스의 팔자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간신히 살아남기 급급했다. 과자 기업 키블러가 1996년 선샤인 비스킷츠를 인수한 뒤 1999년, 하이드록스의 성분을 일부 조정해 '드록시즈'라는 제품명으로 재출시했지만 역시 이름이 별로였는지 이렇다 할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키블러가 2001년 시리얼로 유명한 켈로그에 인수된 뒤에는 소비자들의 요청으로 선샤인 비스킷츠의 브랜드를 붙인 하이드록스가 복각되기도 했다. 1,300건의 전화와 1,000건이 넘는 온라인 서명의 힘을 입어 복귀했지만 하이드록스는 이번에도 썩 잘 팔리지 않았으니 결국 켈로그는 브랜드를 버렸다. 이후 2014년 소규모 과자 및 사탕 제조업체인 리프 브랜즈가 하이드록스의 상표 등록을 새롭게 하고 생산을 재개했다.
각종 음식 영상 콘텐츠들이 발벗고 나서 알린 덕분에 오늘날 하이드록스는 최소한 오레오의 모방품이라는 오명만은 벗었다. 그렇게 선구자로서의 명예는 회복했지만 백 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오레오와 벌어진 초격차를 탈환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018년, 리프 브랜즈는 미국 상공회의소에 오레오의 소유주인 몬델리즈 인터내셔널을 제소했다. 오레오가 하이드록스를 소비자의 눈에 잘 안 띄게 진열대에서 숨겨 놓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국내에서는 몬델리즈 홀딩스 싱가포르와 동서가 지분 50%씩을 소유한 동서식품이 오레오를 생산 및 판매하고 있다. 2010년 청우식품 철원공장을 인수해 2011년 3월부터 오레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원조 오레오(100g당 41g)에 비해 국내산에는 당이 5g 적은 36g이 함유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2022년 기준 8종이 판매되고 종종 한정판이 나오는데, 미국의 85종 이상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한 가짓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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