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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조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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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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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생각과 신념,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포용적인 조직 문화의 첫 단추다. 게티이미지뱅크

각자의 생각과 신념,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포용적인 조직 문화의 첫 단추다. 게티이미지뱅크

"완벽한 조직? 그건 환상이지."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와 유니콘 기업에서 20년 가까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다가 국내 대기업 임원으로 이직한 A의 말이다.

A의 첫 직장은 구글. 산해진미가 무료인 구내식당, 자유로운 출퇴근, 유연하고 수평적인 소통, 철저한 성과 보상으로 대표되는 조직문화가 지금의 구글을 키운 원동력이 아니냐고 묻자 A는 껄껄 웃었다.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퇴근 시간도 따로 없지. 밥을 계속 준다는 건 연료를 계속 공급할 테니 열심히 달리라는 뜻이야." 일주일에 최고 120시간을 일한다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인재가 모인 실리콘밸리를 떠난 결정적 이유는 뭘까. 한참 생각하던 A는 '인종차별의 벽'을 꼽았다. 장시간 노동과 치열한 내부 경쟁을 떠올렸던 터라 의외의 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A는 "연차가 높아질수록 업무 능력만큼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게 중요한데 나는 인도와 중국 출신만큼 탄탄한 커뮤니티에 속하지 못하고 겉돌아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다수의 빅테크가 매년 '다양성 보고서(Annual Diversity Report)'를 발표하고 포용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완벽하지 않나 보다.

국내 최고 기업에서 20년 넘게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다른 대기업 임원으로 이직한 B도 "포용하지 않는 일터"여서 떠났다고 했다. "다른 의견을 말하다가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경험이 쌓이면 입을 다물게 된다. 몸은 편한데 일이 너무 재미없었다"고 고백한 B는 "처음엔 일도 직장도 사랑했다"고 강조했다.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종 등 다양한 인적 구성원을 품는 것만큼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심리적 안전감'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포용은 정량화하기 어려운 '느낌적인 느낌' 아닌가. 국내 플랫폼에서 글로벌 빅테크로 이직한 후 직업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C가 재미있는 답을 내놨다. "그 종이 한 장 차이에 일할 맛이 나." C는 현 직장의 인사평가 방식에 후한 점수를 줬다. "내가 잘한 점을 쓰지 말고 동료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나는 무엇을 도왔는지 쓰라더라. 처음엔 어색했지만 동료의 장점을 찾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동료도 나를 과할 정도로 칭찬해 준다."

기업 인사 계절이 왔다. 모셔온 인재만큼 떠난 인재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시기다. 평생직장은 사라졌지만 인재를 붙잡아 두는 힘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다. 기업이 처한 진짜 위기는 매출 감소가 아니라 '조용한 퇴직자'가 늘어 혁신의 동력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의 저자 엘라 F. 워싱턴은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을 두루 갖춘 다정한 기업은 혁신 가능성이 6배 더 높다고 주장한다.

포용은 정치에도 필요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의 정적이었던 에드윈 스탠턴을 장관에 앉혀 품었고, 스탠턴은 링컨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됐다. 하지만 적과 친구를 가르는 이분법적 세계관의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만든 계엄 정국으로 대통령다움을 잃었다. 포용하지 않는 조직은 서서히 사라지겠지만, 포용하지 않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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