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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감액안'이 불러온 여야 치킨게임…또다시 정쟁에 볼모 잡힌 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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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2025년 예산안 처리를 두고 극단적인 '치킨 게임'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헌정 초유의 '예산 감액안' 단독 처리를 공언하며 2일 본회의에 수정안을 올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국민의힘은 여기에 "감액안 철회와 사과 없이는 추가 협상이 없다"고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첨예한 여야 대립에 양측이 강조해왔던 '민생' 관련 증액 예산은 단 한 푼도 반영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정쟁에 또다시 민생이 볼모 잡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한 "여당과의 합의가 불발됐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법정 시한인 내일(2일) 본회의에 감액 예산안을 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회법은 예산안 법정 시한을 12월 2일로 규정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가 예고한 예산안은 지난달 29일 민주당이 단독으로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처리한 수정안이다. 정부가 편성해 둔 예비비 4조8,000억 원 중 절반인 2조4,000억 원을 삭감하는 등 정부안보다 4조1,000억 원이나 감액된 안이다. 특히 대통령실과 검찰, 감사원, 경찰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의 특별활동비는 전액 삭감됐다. 이들의 '돈줄'을 죄겠다는 뜻이다. 박 원내대표는 "잘못된 나라살림을 정상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강조했다.
특히 삭감된 안에는 민주당이 논의해 온 각종 증액 예산이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재명표' 지역화폐 예산으로 꼽힌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2조 원 증액)이 대표적이다.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2,000억 원), 인공지능(AI) 연구용 컴퓨팅 지원 프로젝트(3,217억 원) 등도 민생 예산으로 분류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각 지역구 예산뿐 아니라 총선 공약 등 정책 실현을 위한 예산까지 포기를 각오하면서 (그만큼) 배수진을 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에서는 예산안 자동부의 제도와 정부의 증액동의권을 단독 처리의 이유로 꼽는다. 책임을 정부로 돌리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11월 30일까지 예산안이 합의 안 되면,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부의한다. 이를 막기 위해 야당은 지난달 29일 이미 예산안 자동부의를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예결위 간사인 허영 의원은 "(증액안을 포함해) 정부는 자동부의 제도를 이용해 마지노선까지 협의를 미뤄왔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해프닝도 빌미를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이날 이재명 대표와 이철우 경북지사 회동 후 "원내대표는 감액 부분에 이의가 있는 부분은 추경안을 편성하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불만이 있으면, 예산안 통과 후 실제 추경을 하면 된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는 즉각 추경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고민하는 눈치다. 민주당이 2일 처리를 못 박은 것은 아닌 만큼 우 의장이 협상 테이블을 만들면 일정 기간 추가 협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 원내대표도 "아직 24시간이 남아있고, 정부·여당의 전향적 태도가 있다면 추가 협상 여지가 있다"고 했다.
다만 여야의 대치가 감정싸움으로 치달으면서 협상은 잔뜩 먹구름이다. 우 의장은 이날 양당 원내대표에게 저녁식사를 통한 협상을 제안했지만,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단박에 거절했다. 박 원내대표는 "불필요한 예산이 더 있다고 하면 더 큰 폭의 감액도 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놨고, 추 원내대표는 "사과와 예산안 철회가 없으면 어떤 추가 협상도 없다"며 반발했다. 추 원내대표는 이어 "'민주당 아버지' 이재명 대표의 지시에 따른 헌정사상 유례없는 막가파식 행패"라며 "예산 심사권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정부·여당을 겁박하는 예산 폭거이자 의회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야당을 계속 압박했다. 이날 경기 안양과 의왕의 폭설 피해 현장에서 민주당의 예비비 감액 결정에 대해 "이재민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민주당이 삭감해 버린 예산에는 1조 원의 재해대책 예비비도 포함돼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특활비 같은 첨예한 항목이 있지만, 여야가 적극적으로 협의를 해서 풀어야 하는 부분"이라며 "민생 예산이나 미래를 위한 투자 예산 논의가 뒷전으로 밀리면 피해를 보는 건 국민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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