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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할수록 예쁘다! 단정함은 지루해...명품도 빠진 '백꾸'

입력
2024.12.02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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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의 로데오 백. 여러 장식을 주렁주렁 단 채로 판매한다. 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캡처

발렌시아가의 로데오 백. 여러 장식을 주렁주렁 단 채로 판매한다. 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캡처

대학생 박수연(22)씨의 가방은 언제나 화려하다. 가방은 하나인데 장식을 2, 3개씩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가방 꾸미기에 빠지면서 여기에 쓰는 돈도 많아지는 중이다. 처음에는 인형 뽑기 가게에서 1,000~2,000원씩 주고 뽑은 인형을 가방에 주로 달았지만, 지금은 각종 키링에 쓸 수 있는 잠재적 상한선을 자신의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 기준 "입생로랑 립스틱 가격인 5만 원대"로 잡고 있다. 그는 "키링은 적당한 가격대라 친구들과 선물로 많이 주고받는다"며 "인형 여러 개를 '믹스매치'한다는 느낌으로 묶어 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열쇠가 필요 없어진 시대, 열쇠고리인 '키링'이 실용품이 아닌 패션용품으로 돌아왔다. 별걸 다 꾸미는 '별다꾸' 열풍이 가방으로 넘어오면서다. 가방 꾸미기, 일명 '백꾸'의 인기는 아이돌 블랙핑크와 뉴진스 멤버들이 지난해 인형 키링을 달고 다니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출되면서 시작됐다. 다양한 종류의 키링 외에도 스트랩, 리본 등 장식품을 동원해 자기만의 가방으로 꾸미는 게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 백꾸는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가방에 당신의 개성을 입히다(Wearing Your Personality on Your Handbag)'란 제목의 기사에서 가방 꾸미기, '백참(bag charms)'의 인기를 다뤘다.

"너는 내 분신"...키링의 진리는 인형

'백꾸'로 검색하면 나오는 여러 쇼츠. 유튜브 캡처

'백꾸'로 검색하면 나오는 여러 쇼츠. 유튜브 캡처

백꾸의 재료는 무궁무진하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인기 있는 건 인형이다. 품절 대란을 일으킨 해외 인형 브랜드인 젤리캣의 토끼 인형 키링, 국내 패션 브랜드 마지셔우드의 인형 키링이 대표적이다. 국내 키링 브랜드인 모남희가 올 초 내놓은 축구 선수 손흥민의 인형 키링인 '쏜희'는 판매가가 5만 원대였지만 리셀 가격이 한때 10만 원대를 넘기도 했다.

인형 키링에 대한 선호는 이를 의인화해 일종의 '반려 인형'으로 쓰고 싶어 하는 수요가 높기 때문. 실제로 인형을 그냥 달기보다는 그 인형에 옷을 만들어 입히거나 선글라스를 씌우는 등 해당 인형을 다시 자신의 스타일로 꾸며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털로 감싼 철사인 '모루'로 직접 만들어 다는 모루 인형 키링이 유행하기도 했다. 인형에 이름을 지어 주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키링 브랜드 모남희의 손흥민 선수 키링인 쏜희(왼쪽)와 인형 브랜드 젤리캣의 토끼 인형 키링. 각 회사 홈페이지 캡처

키링 브랜드 모남희의 손흥민 선수 키링인 쏜희(왼쪽)와 인형 브랜드 젤리캣의 토끼 인형 키링. 각 회사 홈페이지 캡처


키링 브랜드 모남희가 판매하고 있는 키링 인형용 멜빵 바지. 모남희 홈페이지 캡처

키링 브랜드 모남희가 판매하고 있는 키링 인형용 멜빵 바지. 모남희 홈페이지 캡처

광고대행사 이노션 인사이트전략본부의 책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5'는 "긴장의 연속인 현대인은 일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 마련"이라며 "키링과 관련한 주요 연관어로 '애착 인형'이 꼽히는 것을 보면 키링이 단순 패션 소품이 아닌 애착템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키링을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처럼 여기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소비다. 대학생 김주원(21)씨는 "키링을 다는 건 패션만의 이유는 아니다"라며 "엄마가 떠 준 뜨개로 된 키링을 달고 다니면 엄마가 지켜 주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계묘년인 올해, 검은 토끼 인형 키링이 많이 팔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대학생 박수연씨가 가방에 달고 다니는 인형들. 박수연씨 제공

대학생 박수연씨가 가방에 달고 다니는 인형들. 박수연씨 제공


가방은 단순하게, 키링은 유치하게

백꾸에도 유행이 있다. "가방은 더 클래식하고 장식은 더 장난스러운 것을 선호(NYT)"하는 흐름이다. 단순한 명품 가방에 유치한 인형을 달아 '키치'한 느낌을 내는 식이다. 명품 브랜드도 최근 이런 유행에 편승해 인형 키링을 만드는 데 뛰어들고 있다. 가방은 하나 사면 다음 구매까지 기간이 길지만, 상대적으로 싼 장식품을 팔아 소비자의 해당 브랜드 구매 주기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프라다'의 인형 키링은 99만 원, '버버리'의 인형 키링은 40만 원대를 웃돈다.

프라다에서 내놓은 인형 키링. 키링만 99만원에 판매한다. 프라다 홈페이지 캡처

프라다에서 내놓은 인형 키링. 키링만 99만원에 판매한다. 프라다 홈페이지 캡처


'루이비통 스피디 모노그램' 키링. 가방을 장식하는 가방 모양의 키링으로 2.4인치다. 루이비통 홈페이지 캡처

'루이비통 스피디 모노그램' 키링. 가방을 장식하는 가방 모양의 키링으로 2.4인치다. 루이비통 홈페이지 캡처

일부 브랜드는 자사의 대표적 가방 디자인을 본뜬 '작은 가방' 키링도 선보였다. 루이비통의 '스피디 모노그램 백' 키링은 약 6㎝지만, 가격은 123만 원이다. 꼭 명품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가방에 작은 파우치를 달아 무선 이어폰, 인공 눈물, 렌즈 케이스 등을 넣는 실용적 용도로 쓰기도 한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책 '웹소설처럼 만들고 에르메스처럼 팔다'의 박소현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부터 '올드 머니'나 '조용한 럭셔리'와 같이 옷을 클래식하고 단정하게 입는 흐름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모두 똑같이 입는다는 문제가 있었다"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장식이 유행하고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기가 안 좋으니까 새로 사는 것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에 장식을 더하는, 꾸미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라고 여기는 경향도 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옥진 기자
김민지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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