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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연예인들이 하는 것 아냐?" 부모는 몰랐던 '사이버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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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일상이 지워졌다. 더는 SNS에 추억이 담긴 사진을 공유할 수 없고, 교실에서 친구들과 마음 편히 수다 떠는 게 두렵다. 댄서가 돼 무대에 서겠다는 꿈도 사라졌다. 지난여름, 우리 사회를 분노케 한 딥페이크 사건 피해자들의 지옥 같은 풍경이다. 사회적 관심은 계절이 바뀌며 싸늘하게 식었고, 홀로 남겨진 10대들은 더 기댈 곳이 없다.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는 어린 피해자와 가해자가 유독 많은 국내외 딥페이크 사건 그 후를 추적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교실 안 풍경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사고 터지고 나서 부모님과 얘기해보면 깜짝 놀라게 돼요. 온라인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몰라요. 인스타그램에서 불법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만든 합성 이미지) 범죄나 집단괴롭힘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거 연예인들이나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 분이 적지 않죠."
교단에 선 지 11년 된 중학교 교사는 지난달 29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흔히 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잘 모르는 엄마, 아빠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딥페이크 등 10대 범죄나 학교폭력의 주무대가 온라인으로 옮겨갔지만 부모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모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큰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 있다.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이자 성교육 강사인 신가영(48)씨는 "엄마, 아빠들에게 생소한 공간에서 범죄가 벌어지다 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더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온라인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노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10대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사이버 놀이터는 인스타그램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세대별 SNS 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Z세대(9~24세) 10명 중 6명(66.9%)은 인스타그램을 가장 많이 쓰는 SNS로 꼽았다. 반면, 부모 세대(39~54세)에서는 10명 중 3명(36.5%)만 인스타그램을 가장 애용했다. 쇼트폼앱(짧은 영상)인 틱톡은 Z세대 중 5.1%가 가장 흔히 사용한다고 답했지만, 부모 세대는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시야에 잡히지 않는 공간에서 다양한 범죄와 일탈에 노출된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주변 여성의 얼굴 사진과 나체를 합성한 딥페이크가 쉽게 공유된다. 모르는 사람이 다이렉트메시지(DM)로 "지인 능욕(딥페이크 등을 만들어 아는 여성을 모욕하는 행위) 해줄 테니 사진을 보내라"고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틱톡에서는 10대 여성이 '라방(라이브 방송)'을 켜놓고 성매매를 홍보하는 일도 있다. 한 중학교 교사는 "아이가 방문을 잠그고 1시간 넘게 라방하는 소리가 들리면 부모가 의심해봐야 하는데 플랫폼을 잘 모르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면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300개 정도 깐 아이도 봤는데 부모가 이 앱의 성격을 다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가 문제가 됐을 때 어른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자녀 보호책은 '차단'이다. 성교육 강사인 신씨는 "최근 딥페이크 사태가 터지자 주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SNS 못 하게 해야 되느냐'고 많이 물어봤다"고 전했다. 현실 공간에서 이성과 떨어뜨려 놓으려는 부모도 있다. 서울에서 중학생 딸을 키우는 김모(34)씨는 "여학교에 진학시키려고 근처로 이사 가는 부모가 많다"면서 "남자아이들과 만남을 최소화해야 성범죄 가능성도 줄일 수 있고 이성교제 탓에 성적이 떨어지는 일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를 고립시키는 방법으로는 장기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한채윤 남다른성교육연구소 편집위원은 "10대들의 모든 소통이 SNS에서 이뤄지는데 이를 단절하고 지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부모가 사용을 막았는데 몰래 하다가 안 좋은 일을 겪게 되면 '도와달라'는 말조차 못 하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또 10대들은 인스타그램 등에 공개 계정 외에 친구들만 볼 수 있는 비공개 계정을 몇 개씩 가지고 있어 부모가 이를 다 살펴보기는 어렵다.
여학생의 딥페이크 피해를 막으려고 'SNS에서 사진을 다 내리라'고 지시하는 것도 효과적인 대처법은 아니다. 원은정 한국청소년센터 대표는 "SNS에 사진을 많이 올리면 범죄 원인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요즘 아이들은 연락처 대신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공유한다. 딥페이크가 무서워서 SNS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대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이 성평등 인식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해야 사이버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다.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곽경애(48)씨는 "아들을 둔 부모 중 사춘기 아이와 대화하기 껄끄러워 성교육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고, 딥페이크가 뭔지 모를 수도 있는데 괜한 호기심만 유발하는 것 같아 아들에게 예방 교육 자체를 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자녀가 편안한 상황에서 성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도록 대화를 이끄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 편집위원은 "아이가 SNS에 사진 올리는 게 걱정된다면 '너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며 얘기해보는 게 좋다"고 했다. 부모가 자신의 생각을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상황을 털어놓기 쉽기 때문이다. 그는 또 "아들을 키운다면 아이가 '가해자'가 아닌 '목격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하겠느냐'고 물으며 생각을 조율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코리아타임스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 기자(엑설런스랩), 김태연 기자(사회부), 정다현 기자(코리아타임스), 이지수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 기자, 류기찬 인턴기자
영상 : 박고은·이수연·김용식·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김가현 인턴PD, 전세희 모션그래퍼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딥페이크 범죄 피해를 당한 아동∙청소년과 그 가족, 주변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딥페이크 피해와 그 이후 수사, 재판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 학교 안팎에서 겪은 부조리, 2차 가해 등이 있으시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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