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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무갭 투자' 빌라 85채에 가등기 건 부동산 회사... 투자인가 사기인가

입력
2024.12.26 04:30
수정
2024.12.26 09:3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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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 수도권 85채 가등기
하루에 집주인 4명 상대 가등기 8건
피해자, 가등기 탓 강제경매 포기
부동산 회사 "월세 계약인 줄 알았다"
피해자 "대책도 수사도... 구제책 전무"

서울 시내 빌라 밀집 지역. 연합뉴스

서울 시내 빌라 밀집 지역. 연합뉴스

2021년 12월 서울 은평구 갈현동 한 빌라에 전세로 들어간 김준원(가명)씨는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 2억1,500만 원을 떼인 전세사기 피해자다. 전세로 살던 중 '○○홀딩스'라는 회사로 집주인이 바뀌었다. 계약 만료 전 ○○홀딩스 대표 신모씨에게 전세금 반환을 요구하자 "더는 자기 집이 아니다"라는 이상한 말만 남기고 이후 연락을 받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전세사기 특별법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위를 획득한 김씨는 경매로 집을 낙찰받으려고 준비하던 중 이 집에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이하 가등기)가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등기부등본을 보니 신씨는 2022년 4월 8일 무자본 갭투자(김씨 전세금 전액 승계)로 집을 샀고, 같은 달 29일 문제의 가등기가 설정돼 있었다. 가등기 주체는 (주)가나개발(가명).

김씨는 가등기 말소가 절실했다. 경매시장에서 가등기가 걸린 주택은 낙찰 가능성이 거의 제로(0)에 가깝다. 낙찰받아도 순위 보전 효력이 앞서는 가등기권자가 본등기를 한 순간 소유권이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2023년 1월 가나개발 관계자에게 전화가 와 "○○홀딩스 대표에게 받을 돈이 1억3,000만 원이나 되는데 돈을 주면 가등기를 말소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액수를 조율해 보자"며 두 차례 더 전화가 왔지만, 김씨가 응하지 않자 연락이 끊겼다.

김씨는 '가등기 덫'에 걸려 피해 회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다 '가나개발' 가등기 피해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최근 한국일보가 김씨와 같은 피해자를 수소문해 분석한 결과, 가나개발이 서울·수도권 빌라 85채에 가등기를 설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 역시 지난 3월 최초로 '전세사기꾼의 덫 선순위 가등기'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나개발'을 접한 적이 있다.

85채 등기부등본 전수 조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85채의 등기부등본을 전수 조사했더니 4채를 제외한 81채에 '임차권 등기'가 설정돼 있었다. 임차권 등기는 법원 명령에 따라 해당 부동산 등기에 세입자가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임차권)를 기록하는 것을 일컫는다. 81명 모두 전세금을 떼여 강제경매에 착수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81명의 피해자는 경매에 가더라도 유찰이 불가피해 가등기가 말소되지 않는 이상 피해를 회복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달 29일 기준 임차권 등기가 말소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본보가 접한 10여 명의 피해자 역시 이미 경매 유찰 등을 경험해 피해 회복을 위한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은 가등기 주택을 제외하고 있는 데다 경찰 수사도 진전이 없어 국가 차원의 구제책이 전무하다. 결국 가등기말소소송(민사)에 매달리지만, 원고가 사실 관계를 전부 입증해야 하는 구조라 승소 가능성이 '바늘 구멍 통과하기' 수준이다. 임차권 등기가 설정되지 않은 나머지 4채 역시 집주인이 무자본 갭투자로 전세입자를 들인 터라 이들 세입자들 역시 같은 처지로 전락할 게 분명하다.

무자본 갭투자→가나개발 가등기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가나개발이 가등기를 건 85채 등본을 분석해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김씨 사례처럼 모두 '집주인 변경(100% 무자본 갭투자)'→'가나개발 가등기' 공식을 따랐다는 점이다. 세입자 입장에선 전세로 살던 중 자신도 모르게 생긴 일이라 이런 상황을 알래야 알 수가 없었다.

가등기 85건은 2022년 3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단 6개월 동안 이뤄졌다. 이 중 32%인 28건은 집주인이 바뀐 뒤 한 달 내 가등기가 체결됐고, 하루에 많게는 4명의 집주인 상대로 8건의 가등기가 설정된 적도 있다. 지역별로는 경기 30곳, 인천 28곳, 서울 27곳 순이다. 가나개발 이름으로 설정된 가등기가 68건, 나머지 17건은 가나개발 사내이사 2명의 이름이 쓰였다.

특이한 건 가나개발은 총 25명의 집주인에게 가등기를 걸었는데, 1명의 집주인에게 가장 많은 총 49건의 가등기를 설정했다. 이 집주인은 100여 채 빌라를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여 막대한 전세사기 피해를 양산한 혐의로 현재 수감 중인 이모씨다. 25명 중엔 정부의 전세사기 임대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인물도 2명 있었다.

가나개발 "나도 피해자" vs 집주인 "가등기 허용한 적 없어"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본보가 가나개발 등기부등본을 떼 보니 주소는 전북 군산시의 한 마을로 나왔다. 설립 날짜는 2022년 1월, 회사 업종은 부동산 개발·매매·컨설팅·임대업 등으로 돼 있다. 인터넷 지도로 사무실을 확인해 보니 일반 단독주택이었다.

회사 설립 두 달 뒤부터 6개월 동안 서울·수도권 빌라 85채에 가등기를 설정했다. 가등기는 집주인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등기소에서 가등기를 설정하려면 매매계약서와 집주인의 위임장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가나개발은 무자본 갭투자로 집을 산 집주인과 매매계약을 하고 이들의 동의를 얻어 가등기를 걸었다는 얘기가 된다. 85채의 부동산 가치는 151억 원에 이른다. 모두 무갭투자된 점을 고려, 전세금을 모두 합한 액수로 아무리 싸게 샀다고 해도 수십억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가나개발의 행태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등기는 미래에 이 집을 소유할 예정이라며 걸어 두는 일종의 매매 예약이다. 이 때문에 가나개발처럼 이렇게 무더기로 가등기를 거는 사례는 흔치 않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다른 이유가 있는데 명목상 가등기를 건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가나개발을 전세사기꾼과 한패로 의심하고 있다. 집주인들이 무자본 갭투자를 한 바지 집주인으로 짐작되는데, 가나개발이 가장 윗선인 실소유주 아니냐는 것이다. 경찰 역시 초기 전세사기 수사 때 가나개발을 들여다봤지만, 잦은 수사관 변경 등으로 관련 수사는 큰 진전이 없었다.

이런 의심에 대해 가나개발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사정이 급한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싸게 가등기를 했다" "월세입자가 있는 집을 싸게 판다고 해서 집을 산 뒤 명도(부동산 점유를 넘겨받는 절차)하러 가 보니 전세계약이어서 도리어 소유권이전등기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가나개발 상대로 가등기말소소송을 걸었지만 모두 패소했다"며 "법원도 우리가 잘못이 없다는 걸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가나개발이 가등기를 건 한 집주인과의 매매계약서를 보면 월세 계약 승계 조건으로 매맷값 4,000만 원에 계약서를 썼다. 하지만 해당 빌라는 전세보증금 1억3,000만 원(사실상 시세)에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1억3,000만 원짜리 빌라를 3분의 1 가격에 살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피해자들 사이에서 최근 가등기가 문제 되자 현재 수감 중인 한 집주인은 피해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가나개발에 돈만 빌렸을 뿐이지 가등기를 허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보와 접촉한 피해자들도 "실제 가나개발이 집을 구입할 계획이었다면 상식적으로 집을 보러 와야 하는데 한 번도 온 적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 "수사기관 나서야 고리 풀린다" 호소

가나개발에 가등기말소소송을 제기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거의 패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용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 소송에서 이기려면 피해자가 기본적으로 사건 당시 집주인(피고)이 빚이 더 많아 집을 팔아서라도 전세금을 변제할 수 없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어렵다"며 "집주인과 가나개발 사이에 공모 관계가 있었다는 걸 증명해도 집주인의 초과 채무를 입증하지 못하면 소송에서 진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사실상 수사기관이 나서지 않는 이상 이 고리를 풀 수 없다고 토로한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전세사기 대책에서도 가등기가 걸린 주택은 제외돼 있다. 경매에서도 가등기 약정기간이 10년이라 가등기를 말소시키지 못하면 10년 동안 경매를 통한 해결은 요원하다.

김 변호사는 "이렇게 악의적인 가등기가 있는 경우엔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등기 남용을 막기 위해 가등기 설정 시 세입자에게 미리 알리는 대책도 필요하다. 이 같은 본보 지적에 대해 국토부는 "거래 분석팀을 통해 해당 거래들을 분석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 피해자는 "설령 가나개발이 정당하게 가등기를 했다고 해도 현 상황만 놓고 보면 제도를 악용한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며 "집주인이 바뀌고 가등기가 걸린 걸 알 수 없는 구조다 보니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용어 설명

가등기는 둘로 구분된다.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와 담보 가등기다. 전자는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매도인의 이중 매매를 막으려고 등기상 순위를 보전하기 위해 설정하는 것이고, 후자는 돈을 빌려준 이가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전자다. 경매시장에서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가 걸려 있으면 낙찰 가능성이 희박하다. 낙찰받아도 가등기권자가 본등기를 한 순간 소유권이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세입자의 확정일자가 가등기 시점을 앞섰더라도 가등기를 소멸시킬 수 없다. 반면 담보 가등기는 낙찰금에서 가등기권자가 신청한 배당금이 지급되면 동시에 소멸되는 구조라 경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다 보니 법원이 제공하는 문건 처리 내역엔 소유권이전청구권 가등기가 걸린 주택에 대해 '경매 때 상당히 유의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달려 있다.



김동욱 기획유닛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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