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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한 외국인까지 '정의구현' 한다... '열혈사제2'로 본 사적 복수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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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
SBS 드라마 '열혈사제2' 속 주인공인 김해일(김남길) 신부와 식사하던 그의 정보통 고독성(김원해)의 휴대폰에선 불교의 경전인 '반야심경' 낭송이 벨소리로 울려 퍼진다. 천주교 사제 들으란 듯 불교 경전 낭송 소리라니. 놀란 신부의 표정을 본 독성은 "누고"라며 불경 소리가 난 가방에서 휴대폰을 허겁지겁 꺼내며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한다.
사제 앞에서 불경한 상황으로 종교의 경계를 허물어 웃음을 준 이 장면은 김원해의 애드리브로 나왔다. 19일 이 드라마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반야심경' 벨소리는 대본엔 없는 설정이었다. 김원해가 "요즘 릴스에 '반야심경' 벨소리가 유행"이라며 촬영장에서 아이디어를 냈고, 그 얘기를 듣고 폭소한 김남길과 박보람 PD가 동조해 촬영이 진행됐다. 이 드라마에서 김남길은 영화 '조커' 속 주인공 분장을 하고, 구대영 형사 역을 맡은 김성균은 푸바오 흉내를 내며 마약 범죄를 쫓는다. '열혈사제2'는 이렇게 배우들의 애드리브와 패러디 열전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종잡을 수 없는 코미디 요소가 촬영장 곳곳에서 더해지다 보니 김남길은 "작가(박재범)가 '이거 내가 쓴 거 맞아?' 하실 것"이라고 농담했다. '열혈사제' 시리즈는 국가정보원 출신 김해일 신부를 주축으로 한 민간 조직 '구벤져스'가 부패한 검·경찰이 감싸는 범죄를 소탕하는 과정을 다룬다.
"깔 수 있는 게 생겨서 좋은 거야? 그게 마약"
5년 7개월 만의 '열혈사제' 귀환에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지난 8일 첫 방송 시청률은 11.9%로, 올해 TV에서 방송된 미니시리즈(일일극 등 제외) 첫 회 시청률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득세로 'TV 시청률 가뭄'에 허덕이는 지상파 드라마가 첫 방송부터 시청률 두 자릿수로 시청자 관심을 끌기는 이례적이다. 2019년 4월 20%대 시청률로 종방한 '열혈사제' 시즌1의 후속을 기다린 시청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열혈사제2' 1~4회가 전파를 탄 뒤 온라인엔 "시즌1보다 과한 코믹 설정이 부담스럽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유치한 맛에 본다"며 시청자를 불러 모은 '열혈사제2'는 사회 문제를 시의적으로 다뤄 몰입감을 키웠다. '열혈사제2'는 학원가까지 파고든 마약 범죄 확산 실태를 직격한다. 성당에서 갑자기 쓰러진 중학생 상연(문우진)이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한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무분별한 '신상 털기'로 특정인의 사회적 평판을 '끝장'내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나락 사회'도 날카롭게 풍자했다. 마약 범죄 피해자인 상연을 둘러싼 거짓 정보를 퍼트리는 학생들을 향해 김해일이 "그냥 깔 수 있는 게 생겨서 좋은 거야? 무턱대고 남 까는 거 그것도 마약이야"라며 호되게 꾸짖는 식이다.
'열혈사제2'에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성실함을 인정받고 승진한 '월급 사장'과(오요한 역·고규필)과 음식 배달 외국인 노동자(쏭삭 역·안창환)가 약자를 구하는 '영웅'으로 나온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처럼 초인이 아닌 소시민들이 힘을 합쳐 공권력이 놓친 범죄자를 응징하고, 만화처럼 대놓고 코믹하게 연출해 범죄 장르물에 대한 문턱을 낮춘 게 '열혈사제' 시리즈가 'B급 콘텐츠'로 친근함을 얻은 배경이다. 김교석 대중문화 평론가는 "'열혈사제' 시리즈는 소시민을 앞세운 2000년대 '한국형 영웅물'의 원형"이라며 "공권력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범죄를 신부 주도로 코믹한 방식으로 통쾌하게 응징하며 현실 속 사법 체계에 대한 답답함을 풀어주는 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라고 봤다.
박신혜 정해인 송혜교의 '핏빛' 공통점
'열혈사제2'에선 시즌1에서 러시아 마피아였던 고자예프가 귀화 시험을 보고 한국으로 귀화해 고독성으로 새 삶을 살며 김 신부의 마약 범죄 추적을 돕는다. 외국인까지 귀화해 한국 사회 정의 구현에 나선 '열혈사제2'처럼 2, 3년 새 K콘텐츠에선 사적 제재의 주체가 달라지고 있다. 피해 당사자인 민간인이 직접 복수(드라마 '더 글로리'·2022~2023)하는 것에서 경찰(영화 '베테랑2'·2024)에 이어 최근엔 악마(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2024)까지 사적 제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공희정 대중문화 평론가는 "악마까지 사적 제재의 소재로 동원된 건 법질서를 수호하는 공권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는 뜻"이라며 "사적 제재에 귀화 외국인까지 소환된 건 TV 밖 공동체 유지에 대한 위기감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사적 제재로 참교육? 비판 속 변화도
정의구현을 빌미로 한 사적 제재는 법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혐오를 조장할 수 있어 관련 콘텐츠 유행으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달 초 종방한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는 범죄자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잔혹하게 처형하며 이를 '참교육'처럼 포장해 "보기 불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회적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제작 현장에선 '반(反)사적 제재'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달 종방한 드라마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블랙 아웃'에선 살인죄 누명을 쓴 주인공 고정우(변요한)는 출소 후 살던 동네로 돌아가 복수하지 않았다. 변영주 감독은 "공권력을 무시한 자력구제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정우의 행동이 자력구제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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