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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휠체어 배드민턴' 유수영 "'선수촌에 살아 볼래?' 한 마디가 인생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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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즈음. 여느 때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선수촌에서 살아 볼래?" 뜻밖의 제안이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불러주면 가겠다"고 덥석 답해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꿈만 같았던 선수촌 생활이 시작됐다.
최근 경기 이천선수촌에서 만난 '휠체어 배드민턴' 국가대표 유수영(22·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당시를 돌아보며 "제안을 받은 건 2018년인데, 그때는 의사만 물어봤던 거고, 이번엔 진짜 하고 싶은 지를 물었던 거였더라. 바로 짐을 싸라고 해서 나도 놀랐다"며 멋쩍게 웃었다.
유수영은 이후 2023년 초까지 약 4년간 선수촌에서 생활했다. 선수촌은 통상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 앞서 집중 훈련을 하거나 연중 훈련을 소화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인데, 유수영에게 선수촌은 '집'이었다. 그 또한 "신인선수로 발굴돼 1년 중 60~70일 정도를 왔다갔다 하면서 생활해본 적은 있지만, 365일을 풀로 살아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엔 모든 게 좋았다. "선수촌 밖으로 나가기도 싫었을 정도"였단다. 유수영은 "밥도 주고,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다 보니 나는 그저 운동만 하면 됐다"며 "무엇보다 운동을 하고 싶을 때 마음껏 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았다"고 했다.
반년 만에 끝나버린 허니문... 외로움·불면증의 시간
하지만 선수촌에서의 허니문은 길지 않았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는 모든 걸 바꿔놓았다. 감염 위험이 커지면서 직원들이 출퇴근을 멈추자 텅빈 선수촌엔 정적만 가득했다. 유수영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모든 건물의 방과 복도의 불이 다 꺼져있었다. 이곳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다는 사실이 참 사무치게 외로웠다"고 털어놨다.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극심했다. 머리카락이 만지기만 해도 3,4가닥씩 빠졌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가만히 멍때리거나 불꺼진 선수촌을 몇 바퀴씩 돌기도 했지만, 마음 속에 켜켜이 쌓인 울적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인 외로움에 빨리 국가대표가 돼야 한다는 조급함, 불안함까지 더해져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국대 선발 2년 뒤 생애 첫 패럴림픽서 은메달 쾌거
힘든 때일수록 유수영은 이를 악물었다.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기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때 흘린 땀은 결과로 돌아왔다. 2022년 초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세계 1위를 호령하던 김정준(46·대구도시개발공사)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하며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8년 신인 선수로 선발된지 4년 만에 이룬 달콤한 성과다.
쟁쟁한 선배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던 유수영은 지난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패러게임에서 남자 단식 은메달, 복식 동메달, 혼합 복식 동메달을 휩쓸며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세계 랭킹도 한때 3위까지 끌어올렸다. 기세를 이어 지난 8월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도 정재군(울산중구청)과 함께 복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식에서 김정준에 패하며 아쉽게 메달을 놓치긴 했지만, 생애 첫 패럴림픽 무대였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2년 뒤 아시안패러게임부터 준비 시작!... 세계 1위 정조준
패럴림픽을 마친 유수영은 이제 2년 뒤 일본 아이치·나고야에서 열리는 아시안패러게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세계 1위인 라이벌 가지와라 다이키의 '일본 그랜드슬램'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2020 도쿄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가지와라는 이미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아시안패러게임까지 우승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는데, 자국에서 열리는 아시안패러게임까지 재패하면 '일본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유수영은 "국내 1위는 은퇴하는 순간까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에선 반드시 가지와라를 잡고 세계 1위, LA패럴림픽 금메달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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