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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고통스러워야 한다"...푸틴의 민간인 학살, AP통신 기자들이 목숨 걸고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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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공이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일이다. 러시아 접경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긴장과 공포에 휩싸인다. 갑작스러운 공습에 시민들은 당황한다. 집에 가던 한 중년 여성이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요, 어디로 숨어야 할까요”라고 울부짖자 취재진은 차분하게 말한다. “집 지하로 가세요, 민간인은 공격하지 않으니까요.”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러시아군은 민간인을 정조준해 타격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렇게도 무도하게 개시된다.
무차별 공격은 계속된다. 4세 아이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다. 의료진이 응급조치를 하나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의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여주세요”라고 카메라를 향해 외치며 분통을 터트린다. 한 소년은 축구를 하다 폭격으로 다리 하나를 잃는다. 생후 18개월 된 아기가 죽고, 16세 청소년이 숨진다. 카메라는 간혹 슬픔을 못 이겨 흔들리고, 공포에 질려 바닥을 기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에 남을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이달 6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장면 하나하나가 숨을 멈추게 하기 충분하다.
영화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먼저 공격한다”며 개전 직전 침공을 정당화했으나 그의 확언에는 여러 거짓이 담겨 있다. 공포의 늪에 빠진 마리우폴 시민들은 전쟁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들이다. 피트니스센터가 대피소로 지정되는 모습만으로도 전쟁 준비를 해온 나라라고 할 수 없다. 러시아군이 아파트와 병원 등 민간인 시설을 태연하게 공격하는 장면에 어쩔 수 없이 치르는 전쟁이라는 푸틴의 말투가 무색하다. 폭격기가 산부인과 병원을 공습하고, 탱크가 아파트를 포격하는 모습은 아직 현재 진행형인 전쟁의 참혹함을 상징한다.
영화는 미국 AP통신사 취재진이 20일 동안 마리우폴에 머물면서 찍은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AP통신 취재진은 러시아의 마리우폴 봉쇄로 모든 기자들이 다 떠난 후에도 남아 취재를 이어갔다. 그들은 병원에 실려오는 응급 환자들을 촬영하고, 그들 대부분이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식으로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영상이 "조작"됐고 "정보 테러"라고 발뺌한다.
물과 전기가 끊기고 인터넷이 통하지 않는 고립무원의 마리우폴이 영상에 담겼다. 마리우폴 시민들은 대체로 굳건히 뭉쳐 러시아 침공이라는 시련을 극복하려 하나 현실은 이상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시민은 주인이 있는 상점을 약탈하며 전쟁의 민낯을 드러낸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20일 동안 마리우폴에 머물렀던 AP통신의 영상기자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하다)는 현지 의사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표현한다. “전쟁은 엑스레이와 같아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죠. 선한 사람은 더 선해지고 나쁜 사람은 더 나빠져요.”
영화에는 외면하고 싶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체르노우는 마리우폴에서 인터넷으로 AP통신 편집자에게 영상과 사진을 어렵사리 보낼 때마다 경고 문구를 첨부한다. “이것은 고통스러울 겁니다. 지켜보기 고통스러운 광경이죠. 하지만 보기에 고통스러워야만 합니다.” 영화 관객에게 보내는 반전 메시지나 다름없다. 지난 3월 제9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장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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