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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을 '반국가세력' 아닌 '국정 파트너'로 인정해야... DJ를 배우라

입력
2024.11.04 10: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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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절반 행정권력 vs 입법권력 충돌
"대통령의 정치가 필요… 野 자주 만나야"
임기 동안 영수회담 8번 DJ 정면교사 삼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언을 듣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언을 듣고 있다. 서재훈 기자

국민의힘이 지난 4월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여소야대 구도로 5년의 임기를 모두 보내야 하는 헌정사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까지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수를 유지하면서 윤 대통령의 임기 절반은 입법 권력과 행정 권력의 대결 양상으로 치달았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한 법안이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경우만 24회에 달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담긴 명태균씨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대여 공세 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다. '탄핵', '하야', '임기단축 개헌'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특단의 조치 없이 지난 절반의 임기와 같은 대야 스탠스를 고수한다면, 남은 임기 동안 정치는 실종되고 윤 대통령은 궁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대통령으로서 의회 협조 구해야"

민주당이 윤 대통령 육성을 공개하고 지난 2일 대규모 장외집회를 개최, 탄핵 여론전을 시작하면서 여야 관계는 회복이 요원해졌다. 그간 야당을 국정 파트너가 아닌 대결 상대로 인식해 온 탓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야당을 겨냥, "적대적 반국가세력과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비판해왔다.

특히 4일 국회에서 열리는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마저 외면했다. 현직 대통령의 불참은 2013년 이후 11년 만이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1일 국정감사에서 윤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명씨 녹취와 관련 "지난 취임 이후 2년 동안 계속돼온 '대통령 죽여서 당대표 살리자'란 야권의 정치 캠페인의 지속된 맥락"이라고 주장했다. 대결 정치를 고수하는 셈이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대표의 회담 요청에 침묵했던 윤 대통령은 4월 총선 참패 이후에야 영수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회담 성과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이후 대화는 다시 단절됐다. 여권 관계자는 "검찰 출신 윤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더 도드라져 보이지 않겠느냐"며 "이 대표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킨 대선 과정에서 더 공고해졌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통령으로서 의회의 협력을 구하는 등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원로 정치인은 3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욕을 좀 먹더라도, 하실 건 다 하셔야 한다"며 "자칫 국가적으로 불행이 닥칠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정치가 필요하다. 국민 여론을 통합하고 정당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의회를 존중해야 한다"며 "야당을 공격할 대상, 여당은 공격에 필요한 장기판의 말로 보는 인식으론 안 된다"고 조언했다.

"DJ 리더십에서 배워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000년 4월 24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e영상역사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000년 4월 24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e영상역사관

이런 측면에서 윤 대통령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사례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이 적지 않다. DJ의 경우 재임기간 소속 정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자유민주연합과 공동으로 정권을 창출했다. 특히 임기 중 8차례 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갖고 정국 해법의 머리를 맞댔다. 2001년 4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와 영수회담을 앞두고 DJ가 남긴 국정노트엔 '침착, 의연, 정도의 대응 – partner'란 구절이 적혀 있다.

이에 대해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는 "DJ는 언제나 대통령은 야당의 총재와 파트너로서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게 대화와 타협의 정치"라고 설명했다. 김 상임이사는 "6·15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전에도 이회창 총재에게 먼저 얘기하고 성과도 공유하려고 했다"며 "여소야대 상황이었지만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있었기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굵직한 개혁 법안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대국민 입장 표명 및 특검 수용 없이는 정국 경색을 타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실의 거짓 해명 논란이 윤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공정과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직접 법무부 장관에게 상설 특검을 지시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이어 "특검이 아니면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특검 수용으로 지지율이 회복되면 돌파구가 생길 것"이라면서 "이후 당무와 거리를 두고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등거리 정치를 펼치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결국 윤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DJ의 측근이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정치는 포용하고 타협하고 양보하고 협상하는 것이지 옳으냐 그르냐, 합법이냐 불법이냐만 갖고 판단하는 게 아니다"라며 "야당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해 줘야 한다. DJ의 그런 모습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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