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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을 거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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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훈장은 국가나 사회에 큰 공헌을 한 이에게 수여되는 명예의 상징이다. 로마시대부터 충성심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운동경기에서 우승한 이들이나 군인, 시인 등에게 수여했다. 우리나라에선 1900년(고종 37년) 훈장조례 제정을 통해 도입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독립과 건국에 대한 공적을 기리기 위한 건국공로 훈장령 제정으로 3종의 훈장을 창설한 이래 현재 12종의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 최근 정년 퇴임을 앞둔 김철홍 인천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가 대통령이 수여하는 근정훈장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 김 교수는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라는 글을 통해 "(대학교수로) 사회적 기득권으로 많은 혜택을 본 사람이 일정 이상 시간이 지나면 받게 되는 개근상 같은 훈·포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훈장이나 포상을 함에는 받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그 상을 수여하는 사람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했다.
□ 훈장 거부는 자신의 명분을 지키겠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는 1996년 5공 관련 인사들과 함께 국민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일본 정부의 문화훈장을 거부했다. 일왕의 칙령으로 제정된 문화훈장을 거부함으로써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일왕 제도를 비판했다. 배우 소피 마르소는 2016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거부했다. 시아파 지도자 등을 처형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에게 훈장을 수여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 훈장의 남발은 가치 하락을 자초한다. 전두환 정부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한 신군부세력에게 '셀프 훈장'을 주었지만,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로 박탈당했다. 김 교수가 '개근상'에 비유한 근정훈장도 비위행위로 처벌받지 않는 한 33년 이상 공무원 경력이 있으면 받을 수 있다. 엄격한 훈장 수여 기준과 그에 걸맞은 예우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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