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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되는 차세대 구축함 사업...방관하는 방위사업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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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연이어 전쟁이 터지고, 전례 없는 수위의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이 올라가면서 세계 각국은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지난여름 발표한 정강정책에 동맹·우방국들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담기면서 이제 각국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비정상적인 속도로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예정에 없던 전투기·군함 도입 사업이 곳곳에서 발표되고 있고, 주요 방산기업들의 주가도 연일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안보 위협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군에 속하면서도 이러한 흐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국제정세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지만, 윤 정부는 안보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력 증강은 손을 놓고 있다. 전체 국방비는 오르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운영비 증가 때문일 뿐, 무기체계 도입을 위한 방위력 개선비 비중은 전체 예산 대비 30% 미만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탄약을 비롯한 거의 모든 무기의 가격이 급격히 올랐지만, 방위력 개선비는 이를 반영하지 못해 사실상 삭감된 것이다. 남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며 전투기, 군함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이 정부는 예산을 깎다 못해 우리 군에 납품될 무기들을 빼내 수출 물량으로 돌리면서 국가안보에 구멍을 내고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역할이 가장 막중해진 해군력은 정부의 실정(失政)으로 인해 가장 치명적인 전력 손실을 입고 있는 군종이다.
지금 서해에는 신규 건조·개량된 중국의 중·대형 전투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국의 각 조선소 도크도 새로 건조되는 군함들로 빼곡하다. 미국은 중국의 급격한 해군력 팽창에 비명을 지르며 유인·무인 전력을 총동원해 이를 저지할 전력 배치에 집중하고 있고, 일본 역시 기존의 건함 계획을 대폭 수정해 대형 전투함들 도입 속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의 존재를 생각하면 사실상 섬나라이자 무역으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은 바닷길이 막힐 경우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주변국의 해군 군비경쟁을 방관하는 이상한 나라다. 큰 틀에서 보자면 윤석열 정부 자체가 국방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서 보면 무기 도입 사업을 총괄하는 방위사업청의 무능이 해군 전력 증강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사업 일정이 크게 지연되고 있는 차세대 구축함 사업, KDDX와 관련된 질타가 쏟아졌다. 이 사업은 7조8,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만재배수량 9,000톤 급의 고성능 구축함 6척을 2036년까지 전력화하는 계획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제정세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고, 주변국의 해군 군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물론, 우리 해군 주요 구축함들의 노후화도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사실 이 사업은 예산을 더욱 늘리고 일정을 크게 앞당겨야 하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업이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다.
이 사업은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맡았다. 마지막 남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두 업체의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방사청이 이를 방관하면서 사업은 계속해서 표류하고 있다. 올해까지 사업자 선정과 계약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산은 불용 처리되고, 내년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은 다급한데 방사청은 눈치만 보며 의사결정을 미루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결격사유가 없다면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가져가는 것이 관행이라는 입장이고,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이 기밀유출 사건으로 보안 감점을 받았기 때문에 경쟁 입찰로 사업자 선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계법령에 명확한 강제조항이 없기 때문에 법과 규정의 기준에서 보자면 양사의 입장은 모두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현행법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렵다면 해군에 최고의 무기를 쥐어줄 의무가 있는 방사청은 두 경쟁자를 비교평가해서 더 나은 쪽을 가려내고 사업을 계획된 일정에 맞게 진행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방사청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시비나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담당자들은 자신의 임기 중에만 폭탄이 터지는 것을 피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KDDX는 기존에 만들어진 다른 전투함들과는 기술적인 수준에서 차원이 다른 군함이다. 전반적인 목표 성능이 미국의 최첨단 이지스 시스템과 거의 대등하고, 이 정도 수준의 군함을 선체·센서·무장·전투체계까지 독자적으로 개발·건조한 나라는 사실상 미국뿐이다. 이 때문에 KDDX 사업은 하루빨리 상세설계·선도함 건조를 시작해 가능한 한 빨리 선도함을 띄우고, 기술적 오류들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가 KDDX 사업에 책정한 예산은 개발비 1조8,000억 원, 6척 건조비 6조 원 등 ‘고작’ 7조8,000억 원에 불과하다. 비슷한 체급·성능의 미국·영국 군함이 개발비를 제외하고 건조비만 1척에 2조4,000억 원에서 3조 원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예산이다. 이는 관료들이 이러한 군함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 기술력과 돈이 들어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관료들은 ‘국방력 증강’이라는 정성적 결과물보다 ‘예산 절감’이라는 정량적 결과물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잡음 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예산을 절감하는 것이 곧 능력으로 인정받는 조직 분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갑’의 위치에서 방산 업체들을 찍어 누른다. 과거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주도해 기술을 개발하고 조선소는 설계도를 받아 시키는 대로 건조만 하면 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조선소가 기술 개발은 물론 설계와 건조까지 전부 수행한다. 건물을 지을 때도 건축사사무소와 시공회사, 감리회사가 따로 있는데, 우리 방사청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군함 건조라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개발·설계·건조를 모두 조선소에 맡기고, 개발·설계비용은 주지 않거나 비현실적으로 낮은 금액으로 입찰을 시킨다. 과거 필자는 '차세대 첨단함정 건조 가능성 검토'라는 국방부의 한국형 항공모함 건조 가능성 연구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개념설계까지 진행된 그 프로젝트에 국방부가 책정한 예산은 최종 보고를 위해 외부에 발주해 제작한 모형 제작비 정도에 불과했다. 반년 넘는 기간 동안 컨소시엄에 참여한 모든 기관은 인건비는 고사하고 비용을 갹출해 연구를 진행했다. 물론, 당시 개념설계 작업을 진행한 조선소는 이 연구 때문에 상당한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주체가 사업을 완수한 것은 해군력 강화에 기여하고, 차후 항공모함이 발주됐을 때 이 사업을 수주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방사청이 진행한 다른 사업들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됐다. 신형 군수지원함(AOE-II) 사업은 실제 소요 비용보다 1,000억 원이 부족한 금액으로 입찰 공고가 나왔다가 유찰됐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사업은 한화오션이 방사청 측의 설득으로 손실을 감수하고 떠안았다. 최근 조선소들이 ‘보이콧’하며 사업 설명회조차 참가하지 않은 울산급 배치-IV 1·2번함 건조 사업 역시 논란이다. 방사청은 이전 모델보다 덩치·성능이 더 향상된 배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사업비는 이전 모델보다 400억 원을 줄여 조선소들에 출혈 입찰을 강요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공급망 문제와 원자재·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비용은 급증했는데, 총사업비가 20% 이상 늘어나면 방사청은 기획재정부로부터 사업타당성 검토를 다시 받아야 한다. 이는 담당자들의 업무량 증가는 물론, 인사고과 ‘마이너스’로 이어진다. 이것이 최근 방사청의 주요 건함 사업들이 잡음을 내고 있는 이유다. 방위사업청의 존재 목적은 ‘국방력 강화’이지 구성원들의 평안과 출세가 아니다. 지금은 안보 위기 상황이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방사청의 자정과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면, 상급기관이 나서서 해체 수준의 고강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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