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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는 왜 안정적인 맛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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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2주에 1회 연재합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24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통계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올해 7~9월 우리 경제가 전 분기에 비해 0.1% 성장에 그쳤기 때문이다. 1분기 1.3% 성장하며 호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2분기 0.2% 역성장(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후 3분기에도 의미 있는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반면 미국 경제는 지난 4분기 동안 1.1%, 0.8%, 0.4%, 0.7% 성장해 항공모함 같은 안락함을 보였다. 대체 왜 한국 경제는 안정적인 맛이 없을까?
아래 시각물의 파란 선은 경제성장률, 붉은 선은 수출 증가율을 나타낸다. 한눈에 알 수 있듯, 한국 경제는 수출 변화에 따라 성장률이 춤추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2001년과 2016년에는 수출이 크게 감소했음에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참고로 2001년에는 이른바 카드 버블이 발생했고, 2016년에는 1,007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내수경기의 호황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런 예외를 제외하면 한국 경제는 ‘수출=성장률’의 등식이 일반적이다.
수출과 수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 즉 대외 의존도가 2024년 6월 말 기준 90.6%에 이를 정도로 높다 보니 내수경기가 웬만큼 좋지 않고서는 수출경기 변동의 충격을 벗어나기 힘든 셈이다. 특히 2022년부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화 문제가 부각되며, 건설투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만큼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우리 정부가 내수 부진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여러 정책을 사용했던 것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7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얘기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GDP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도 잊지 말자.
그런데 내수경기의 만성적인 부진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수출의 변동성이 대단히 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21년 2분기 한국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2.0% 늘어났지만 불과 1년여가 지난 2022년 4분기에는 10.0%의 감소를 기록했다.
한국 수출이 급등락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한국 주력 수출 품목의 대부분이 매우 경기변동이 큰 내구재 위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구재란, 한번 구입하면 적어도 6개월 이상 사용하는 품목을 뜻하는데 냉장고와 텔레비전, 스마트폰, 그리고 자동차가 여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2000년 정보통신 거품의 붕괴 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실업자가 대거 늘어나는 불황이 닥칠 때 새로운 자동차나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위축된다. 경제에 찬바람이 불 때, 깨진 스마트폰 액정에 테이프를 붙인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2020년처럼, 정부가 강력한 재정정책을 사용할 때에는 손때 묻은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새것으로 교체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의 수출 상위 10대 품목을 살펴보면, 자동차(2위)와 자동차부품(4위), 그리고 무선통신기기(10위)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반도체(1위)와 평판디스플레이(8위) 등 관련 부품까지 포함하면, 한국 수출 품목 대부분이 내구재와 연관을 맺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의 소비가 아주 조금만 줄어도 큰 타격을 받는다.
아래 시각물은 미국의 내구재 소비와 한국 수출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대단히 밀접한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미국 경제는 세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6.5%에 불과한데, 미국 내구재 수요 변화에 한국 수출이 이렇게 요동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세계의 소비시장 규모 변화를 측정했더니, 아래와 같은 시각물을 얻을 수 었다. 미국은 1970년대에도 세계 소비시장의 30%를 차지했는데, 이 비중은 2022년에도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에 반해 유로 지역, 즉 유로화가 유통되는 지역의 비중은 같은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10년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 그리고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경제에 큰 타격을 입힌 탓이다. 그러나 이 두 지역만으로도 세계 소비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줄어든 유로 지역의 몫을 채운 것이 중국이었다. 1970년 세계 소비시장의 단 2.5%에 불과하던 것이 2021년에는 13.7%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소비시장은 미국이나 유로 시장에 비해 크게 두 가지의 결함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 결함은 개방성이다. 2017년 한국산 제품과 서비스를 향해 내려진 제재조치, 한한령(限韩令)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수시로 각국의 상품을 대상으로 강력한 불매운동이 단행된다. 2012년에는 센카쿠 열도 분쟁을 계기로 일본 자동차들이 성난 군중에 의해 불탔고, 2021년에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산 면화 사용 거부를 이유로 스웨덴의 패션브랜드 H&M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된 것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이다. 2010년을 전후해 중국 소비시장의 점유율이 둔화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2022년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2021년 공동부유(共同富裕) 정책 시행, 2022년 초의 코로나 관련 봉쇄 정책 시행 등을 계기로 상하이를 비롯한 동해안의 주요 도시 주택가격이 폭락세로 돌아선 것이 소비불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가계 자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기에 부동산가격의 하락 흐름이 멈추지 않는 한 중국의 소비가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금리를 인하하는 등 강력한 경기부양 정책을 펼치고 있기에, 미리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1990년대 일본 사례가 잘 보여주듯 주택가격이 3년 이상 급락한 뒤에는 연쇄적인 악순환이 촉발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는 금융기관의 부실화 징후가 드러나지 않지만, 주택가격 하락으로 담보가치가 떨어지고 내수경기의 부진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은행의 부실채권 문제가 부각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경제는 수출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경제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특히 한국 수출 품목의 대부분이 내구재에 치중돼 있다는 점에서, 미국 등 선진국 소비의 일시적인 변동에도 큰 영향을 받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중국이 새로운 소비시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한한령과 국내 대기업 진출을 어렵게 하는 공동부유 정책 등으로 가장 문턱이 높은 시장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우리 경제는 미국 등 선진국 소비시장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신세를 벗어나기는 힘들 전망이다.
당장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및 미국 노동시장 침체 공포가 유발한 올해 8월 초의 주식시장 붕괴 사태만 보더라도,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이런 점을 감안해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은 국내지표보다는 해외지표, 특히 소비자신뢰지수나 소매판매처럼 미국 소비의 흐름을 신속하게 보여주는 경제통계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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