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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전어'가 '겨울 방어'와 경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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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가을이면 떠들썩하던 ‘전어’가 올해 더욱 귀한 존재가 됐다. 대형마트 수산물 코너에서 아예 취급하지 않거나 극소량만 판매된다. 똑같은 어종이라도 먹기 좋은 계절은 따로 있다. 봄에는 도다리, 여름엔 민어, 가을 전어, 겨울철 숭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청어과에 속하는 전어는 봄부터 여름까지 산란기다. 가을이 돼야 뼈가 부드러워지고 속살에 지방질이 스며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회나 회무침이 기본이고 구이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어가 사라진 건 장기간 폭염에 수온이 상승하면서 폐사가 늘었기 때문이다. 어획량이 작년 대비 반토막 났다는 것이다.
□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화살촉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전어(箭魚)’로 썼다. 서유구의 ‘난호어묵지’는 돈 전자를 써 ‘전어(錢魚)’로 표기했다. 돈을 아끼지 않고 모두 좋아했다고 한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설명이 꼭 붙는 건 전어 굽는 냄새가 발길을 재촉한다는 의미다. “전어 굽는 가을이면 추수 걱정에 집 떠난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뜻이 와전됐다는 설도 있다. 후자라면 고단한 시집살이를 풍자한 것도 된다.
□ 사실 전어가 가을철 ‘국민 생선’이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만 해도 3남지방에서 주로 먹었지만 1990년대 들어 운송·보존기술이 발달해 전국에서 보편화됐다.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B·D 등이 풍부해 골다공증과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고 널리 알려졌다. 원래 남도에선 전어가 잡히면 버렸다고 한다. 성질이 급해 잡힌 뒤 빨리 죽기 때문이다. 상품가치가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지금은 조업이 어려운 날은 더 금값이 된다.
□ 고유명사처럼 쓰던 ‘가을 전어’가 귀해진 것 또한 이상기후와 환경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전어 서식에는 바다 수온이 낮아야 하니 최근 몇해간 겨울철 어획량도 만만치 않은 추세다. 갈수록 ‘겨울 전어’가 부각될 수도 있는 셈이다. 날씨가 추울수록 맑은 소주와 어울려 저녁을 풍부하게 달래줄 것이다. 이참에 12월과 1월에 가장 맛이 좋은 ‘겨울 방어’와 경쟁할지도 모르겠다. 한반도 주변 기후변화에 우리 일상도 바뀌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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