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장애인은 온라인 쇼핑하면 된다”는 정부 질타한 대법관

입력
2024.10.25 00:10
27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에 지체장애인들이 참관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에 지체장애인들이 참관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휠체어 경사로 등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기준이 미비해 편의점, 약국, 카페 한 번 제대로 이용하기 힘든 장애인들이 낸 소송에서 정부 측이 “소매점 대신 온라인 구매를 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생활인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충격적인 발언이다. 대법관조차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체장애인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소송 상고심 공개 변론을 열었다. 1998년 제정된 구 장애인편의법 시행령이 지체장애인 편의 제공 의무를 ‘바닥면적 합계가 300㎡ 이상의 시설’로만 정해, 전국 편의점의 3% 정도에만 적용됐다. 2018년 장애인들은 “국가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가 위법하다”며 국가배상 책임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고, 이후 2022년에야 시행령은 ‘바닥면적 합계 50㎡ 이상 1,000㎡ 미만 시설’로 개정됐다.

이날 참고인 발언에 나선 지체장애인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의 증언은 절규에 가깝다. “카페를 가려고 해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카페를) 못 찾아 결국 길에서 이야기하고 헤어지고, 물을 사려고 해도 편의점을 못 가고, 머리를 깎고 싶어도 이용원을 못 간다.”

이에 정부 측 대리인은 “(장애인들은) 소매점 대신 온라인 구매를 할 수 있다. 편의시설이 상당히 갖춰진 대형마트 이용도 할 수 있다. 또한 활동보조사를 통해 대신 구매할 수도 있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정부 측 입장을 비판한 대법관들의 지적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오경미 대법관은 “(소매점 접근권을)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하는 것에 놀랐다”며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으로 하라는 것’이고 쉽게 치환되는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동등하게 접근할 권리가 5%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예 (권리가) 없는 것과 같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약자 보호 의무가 있는 정부 측이 “장애인들은 온라인 쇼핑을 하면 된다”는 공개 발언을 할 정도로 무지하다는 게 개탄스럽다. 이번 소송의 최종 결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공직사회 구성원들은 곳곳에 약자 차별 제도들을 방치하면서 핑곗거리만 찾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