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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복을 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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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날. 숭례문 앞 텅 빈 대로로 긴 군대의 행렬이 지나갔다. 나는 흔히 보기 어려운 무기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자, 잠시 거리에 나가 행진을 감상했다. 그러나 신무기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람’의 모습을 문득 발견하곤, 이내 그쪽에 정신을 빼앗겼다.
연도의 시민은 열렬한 환호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기갑차량 위로 몸을 내민 간부는 손을 마주 흔들며 화답했고, 병사는 바깥 열기가 자못 궁금한 듯 쪽창 밖으로 앳된 얼굴을 보이며 활짝 웃었다. 정체로 잠시 행렬이 멈추자, 인도 위 어르신들은 차량 위 군인에게 연달아 ‘엄지 척’을 날리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사복과 제복이 함께 벌인 잔치였다. 쿠데타 세력이 헌정을 유린하고 경찰이 정권의 시녀로 부역했던, 그래서 제복이 대접받지 못한 나라에서 군복 입은 군인에게 박수와 찬사가 쏟아진 보기 드문 장면이다.
장병들이 오와 열을 맞추는 훈련은 했을지언정 미소 교육을 받진 않았을 터이니, 그들의 웃음은 뜨거운 반응에 감동해 자연스럽게 나온 표정이었을 거다. 박수와 환호는 병사에겐 국방 의무의 보람을 깨닫게 해준 계기였고, 국토 수호를 업 삼아 투신한 간부에겐 초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준 기회였을 것이다.
정부의 진의는 달랐을지 모르겠다. K방산 수출을 위한 프레타 포르테(바로 입는 기성복 전시회), 쓰레기와 미사일을 번갈아 날리는 북한을 향한 경고, 정권 기반인 보수층을 겨냥한 정치 쇼였을 수 있다. 그러나 성원과 찬사를 직접 몸으로 느낀 장병 입장에선 ‘내 존재의 의미’를 체화할 훌륭한 정훈교육이었음도 부인하긴 어렵다.
잔치니까 돈이 들어갔다. 79억 원. 그러나 군인의 자부심을 높인 효과가 있었다면 현 정부가 소통하겠다며 대통령실 이전에 쓴 수백억 원, 전 정부가 코로나19 때 국민들에게 통신비를 지급한다고 뿌린 수천억 원보다 훨씬 ‘가성비’ 높았던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도로에서 탱크를 보는 건 여전히 거북할 수 있다. 12·12 때 군의 중앙청 진주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고, 이듬해 신군부가 광주에서 저지른 만행의 상처도 다 치유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이 군대를 불편해하고 군인이 국민 앞에 당당하지 못한 현실이 길게 이어져, 애먼 후배들이 선배들 원죄를 뒤집어쓰고 살았다. 인구 절반이 인생 수년을 바칠 정도로 중요한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누구나 해본 일’이라며 군무를 낮잡아 보는 시선도 여전하다. 그래서 국군의날이 다시금 부각된 것은 자긍심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K방산 전성기에 온 K국방의 위기(인적자원 부족)는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군대보다 안타까운 건, 박수받을 기회조차 못 챙기는 경찰이다. 경찰 수뇌부는 이번 79회 생일에서도 자성을 앞세우며 “온 힘을 다해 정진하겠다”고 했다. 열린음악회 정도를 빼면 경찰의날을 맞아 현장 경찰관들이 국민 성원을 경험하며 자부심을 높일 만한 기회를 찾아볼 수 없다.
뭘 잘해야 칭찬도 할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칭찬과 박수엔 보이지 않는 힘(피그말리온 효과)이 있다. 국민 성원이 높은 사기로 이어지고, 제복의 자긍심이 국방 치안력의 향상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을 위해선 마중물이 필요하다. 평생 제복을 입기로 결정한 이들이라면, 국민 선의에 보답할 수용성 정도는 분명 갖췄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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