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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서 질식사, 망망대해 표류… 계속되는 로힝야의 비극

입력
2024.10.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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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해역에 로힝야 100명 탄 선박 도착
일단 물과 식량만 제공… 난민 육지 수용 미지수
태국선 '화물 트럭 탑승' 2명 사망·8명 의식 불명

20일 인도네시아 남부 아체주에서 현지 수색대원들이 배를 타고 자국 해안으로 온 로힝야족을 구조하고 있는 가운데, 부상을 입은 난민들이 선박 위에 누워 있다. 아체=AFP 연합뉴스

20일 인도네시아 남부 아체주에서 현지 수색대원들이 배를 타고 자국 해안으로 온 로힝야족을 구조하고 있는 가운데, 부상을 입은 난민들이 선박 위에 누워 있다. 아체=AFP 연합뉴스

미얀마의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의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 나은 삶과 자유를 찾아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좁고 어두운 곳에 갇힌 채 질식해 숨지거나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끝내 땅을 밟지 못하고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21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최북단 수마트라섬 아체주(州) 정부는 지난 19일 해안으로부터 약 5㎞ 떨어진 지점에서 로힝야 난민 100여 명이 탄 목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배는 엔진이 꺼진 상태로 바다 위를 표류하던 중이었다.

주정부 지도자 무함마드 자발은 AFP에 “배에 시신이 최소 한 구 있는 것을 봤고, 어린이도 많이 탑승해 있었다”고 말했다. 당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들을 육지로 데려온 뒤 식량과 물을 제공했다.

다만 이들을 껴안을지, 바다로 되돌려 보낼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유헬미 아체지구 대변인은 “난민 수용 여부는 (지방정부의) 이민국 결정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작은 선박 위의 100여 명은 또다시 바다로 보내져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한다.

로힝야족의 목숨을 건 여정은 육지에서도 이어진다. 지난 17일 태국 북부 춤폰주의 한 숲에서 로힝야족 10명이 발견됐다. 두 명은 이미 질식해 숨졌고, 나머지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부상자 중 한 명은 결국 병원에서 목숨을 잃었다.

로힝야 난민들이 말레이시아 밀입국을 위해 탑승한 냉장 화물트럭 모습. 운전자들은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 태국 까오솟 홈페이지 캡처

로힝야 난민들이 말레이시아 밀입국을 위해 탑승한 냉장 화물트럭 모습. 운전자들은 태국 경찰에 체포됐다. 태국 까오솟 홈페이지 캡처

태국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을 포함한 로힝야족 26명은 냉장 트럭 화물칸에 숨어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 양곤을 거쳐 태국 국경도시 매솟으로 밀입국했다. 이후 1,000㎞를 이동해 말레이시아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러나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6시간씩 갇혀 있던 탓에 사망·부상자가 속출하자 브로커(매매 업자)들이 희생자들을 숲속에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경찰은 이들과 함께 출발한 또 다른 로힝야인 16명을 구출하고, 태국인 트럭 운전자 2명을 체포해 불법 밀입국 연루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태국 영문 매체 까오솟은 “로힝야족은 말레이시아로 가서 일자리를 찾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트럭에 탔다”며 “(탈출을 위해) 1,000만 짯(약 650만 원)을 두 차례에 걸쳐 지불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로힝야족은 불교도가 대다수인 미얀마에서 오랜 기간 탄압받았다. 2017년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족 대량 학살에 나서자 약 74만 명이 강간, 살해, 방화 등 각종 폭력을 피해 국경을 맞댄 방글라데시로 도피하거나 정글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극심한 생활고와 질병, 범죄 등에 시달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로힝야족이 다수 거주하는 라카인주에서는 미얀마 군부와 이들에 맞서는 소수민족 무장단체 간 격전이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목숨이 위협받자 많은 이들이 육·해상 경로를 통해 같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 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밀입국 알선 브로커나 인신 매매 조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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