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트럼프와 해리스의 ‘건곤일척’ 대결의 흐름을 미국 내부의 고유한 시각과 키워드로 점검한다.
<9> 아시아계 유권자 공략법
중요성 높아진 아시아계 표심
아시아계의 분노 읽은 트럼프
8년 전 전략 답습하는 해리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8월 말 이상한 행보를 보였다. 워싱턴DC 교외로 버지니아주에 속한 폴스처치의 한 유명 베트남 음식점에 모습을 드러낸 것. 버지니아는 민주당 승리가 확실한 지역이고, 심지어 베트남계 출신인 공화당의 버지니아 상원의원 후보는 당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경쟁자에게 11%포인트 차로 지고 있었다.
필리핀, 베트남계의 친공화당 성향
트럼프 대통령이 득표에 도움되지 않을 행보를 보인 까닭을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전 아시아계 책임자에게 물었다. 대답은 명쾌했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아시아계 유권자 중에서도 베트남과 필리핀 이민자 집단을 가장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필리핀과 베트남 이민자 집단은 각각 강력한 가톨릭적 기반과 반공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게다가 필리핀(440만 명)과 베트남(230만 명) 이민자는 아시아계 가운데 중국(520만 명)과 인도(480만 명)에 이어 3위와 4위를 차지하며, 200만 명으로 5위인 한국계보다도 앞선다.
미국에서 아시아계는 일반적으로 정치 기부금에 소극적이지만, 전체 유권자의 6%를 차지하기 때문에 갈수록 선거에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세한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7개 경합주에서는 중요성이 더욱 크다. 실제로 7개 경합주에서 아시아계 유권자는 140만 명에 달하는데, △위스콘신의 몽족계 △네바다의 필리핀계 △펜실베이니아의 베트남계 △노스캐롤라이나의 인도계 △조지아의 한국계 표심은 이번 대선에서 민주·공화당 모두 신경을 쓰는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물론 아시아계 가운데서도 기부에 적극적인 곳도 있다. 바로 인도계다. 이들은 점점 더 큰손 기부자 반열에 오르고 있는데, 그에 맞춰 이들의 정치적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연방하원과 상원의 아시아계 미국인 의원 20명 중 5명이 인도계(모두 민주당)일 정도다. 상원의원 시절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그의 인도인 어머니 때문에 인도계로 여겨지기도 했다. 인도계의 자금력은 중소 모텔에서 중견 호텔에 이르기까지 숙박업계를 장악한 인도계가 주도하는 '아시아계 호텔 운영자 연합'(Asian American Hotel Owners Association)에서 나온다. 이 단체는 미국 호텔의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공화당은 이미 이 단체를 통해 모금을 받고 있다.
아시아계 유권자들도 뚜렷한 세대차이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아시아계 유권자 공략에서 세대 격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이민자(1946~1964년 출생)는 보수적 경향이 있는 반면, X세대의 성향은 보수와 진보가 절반가량으로 갈리고,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는 압도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이런 유권자를 공략하는 건 매우 복잡한 전술이 필요하다. 노년층은 영어에 덜 능숙하고 모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반면, 영어에 능통한 젊은 세대는 고국 언어의 매체를 거의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아시아계에서 나타나는 세대차 때문에 히스패닉계나 아프리카계(흑인)를 겨냥할 때보다 선거운동 방법이 더 복잡한지에 대해 공화당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각각 스페인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계와 아프리카계를 겨냥한 홍보물을 만들 때보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부가 효과도 있다고 응답했다. 아시아계 각각의 문화와 언어를 고려해 홍보물을 만드는 건 힘들지만, 소수계를 배려하는 그런 홍보물을 통해 백인 유권자에게 공화당이 '인종적으로 포용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8년 전 인종차별 이슈에 매달리는 해리스 진영
한편 8월 중순부터 진행된 해리스 진영의 아시아계 공략은 트럼프의 인종차별 성향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되고 있다. 약 9,000만 달러를 투입해 경합주를 중심으로 정치광고가 집행되고 있다. 그러나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데이터에 따르면 아시아계를 포함, 히스패닉과 아프리카계 유권자 모두에서 지지세가 감소하고 있다. 한국계 유권자의 민주당에 대한 정당 정체성은 2020년 이후 51%에서 38%로 떨어졌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한국계 이민자가 많이 거주하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인종차별 이슈 대신) 경제 문제가 한국 이민자의 최대 관심사라고 전했다.
트럼프가 최근 (미국 고유 문화인) 팁에 대한 과세를 백지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이유다. 이는 일용직 직원 고용에 어려움을 겪는 영세사업자의 표심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트럼프 진영에서는 네바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산업에 대거 고용된 필리핀계 유권자를 겨냥한 것이다. 네바다주의 경우 전체 인구의 11%가 필리핀 등 아시아계다. 팁에 대한 과세 철폐는 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카지노와 호텔 근로자에게는 엄청난 이슈다. 트럼프 발표가 나오자마자, 해당 이슈의 중요성을 알아챈 해리스 진영도 재빨리 같은 정책을 채택했다.
결론적으로 해리스 진영은 최근 2년간 인플레이션과 고물가에 시달리는 아시아계 유권자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는 평가다. 트럼프를 인종차별 이슈로 공격하는 정치광고는 8년 전과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경제 이슈에 대한 소수 인종의 아픈 곳을 공략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해리스가 역대 선거에서 민주당을 선호해온 유권자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 되고 있다. 요컨대 해리스 진영은 선거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레스토랑에서 60달러 음식을 '테이크 아웃'하면서도 후한 팁을 남길 정도로 아시아계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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