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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와 김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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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 중 하나는 부인이었다. 육영수 여사는 나대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도,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1년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박 전 대통령도 육 여사의 정치적 위상을 인정했다고 전해진다. 청와대에서 이뤄진 문교부 관련 인사들과의 접견에서 한 참석자가 “각하께서 사모님 덕을 많이 보신 것 같다”고 묻자 “내 표의 30%는 우리 내자가 얻은 것이라고 하더라”고 응답했다.
□일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불행한 최후도 육 여사의 부재를 원인으로 진단한다. 남편의 정적인 김대중 의원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 전화를 걸 정도로 육 여사는 ‘청와대 야당’을 자처했다. 1974년 8·15 기념식에서 문세광의 저격으로 그가 숨지면서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균형감이 무너졌다는 얘기다. 빈자리를 장녀 박근혜가 맡았지만 완전히 채울 수는 없었다.
□윤석열 검사가 짧은 기간, 정치적 자산을 쌓아 대통령이 된 건 김건희 여사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저기 드러난 녹취 파일, 문자메시지도 김 여사의 나름 노력을 보여준다. 머뭇거리던 남편을 격려하고, 격의 없는 대화로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과 인맥으로 대선 승리에 기여했을 수 있다. 김종인 전 개혁신당 상임고문은 “김 여사가 윤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권력을 어느 정도 향유할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최대 공헌자가 아니다. 우선 육 여사의 장녀, 박근혜 전 대통령 몫이 더 커 보인다. 윤 검사는 최순실 사건 수사로 정치적 덩치를 키웠고, 2022년 대선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암묵적 지지를 받았다. 가장 큰 공헌자는 평범한 유권자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을 믿었던 이들이다. 의료개혁, 대북정책 등에서 지지하는 국민들도 절반 이상은 김 여사 행보에 고개를 돌린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2021년 12월 26일 대국민 사과에서 김 여사도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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