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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써니'처럼... '랩'으로 동료 추모한 칠곡할매 '수니와 칠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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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푸단(아프단) 말도 안 하고 그렇게 가버리니 조트나(좋더나). 왜 저기 누워 있노. 왜 그래 쎄게(벌써) 갔노. 하늘나라 가서 앞푸지 말고 니가 좋아하는 랩 많이 부르고 있거라."
16일 오후 2시 칠곡할매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 멤버 서무석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대구 달서구 남대구전문장례식장. 유가족들의 흐느낌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던 장례식장에 별안간 요란한 랩이 울려 퍼졌다. 수니와 칠공주 멤버들은 2011년 여고생들의 우정을 그린 영화 '써니'의 한 장면처럼, 영정 사진 앞에서 서 할머니만을 위한 추모 공연을 펼쳤다.
"나는 지금 학생이야. 나이가 많은 학생이야. 가방 메고 학교에 가! 공부하니 좋아 죽을 것 같다가도 눈이 침침 당장 땔(때려)치고 싶다가도 용기 내어 꿈을 향해 달려가지!"
이날 할머니들이 선보인 노래는 '무석이 빠지면 랩이 아니지', '나는 지금 학생이야' 등 2곡. 어린 시절 배우지 못한 한을 랩 가사로 풀어낸 곡이다. 할머니들은 흥겨운 몸짓으로 랩을 했지만, 이내 영정 사진을 보곤 울먹거렸다. 곁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유가족들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지난 1년여 동안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동고동락한 멤버들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슬픔을 달랬다. 이필선(88) 할머니는 "가장 친하게 지냈는데도 평소 아프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함께 활동을 하며 쌓은 추억이 너무나 많은데 먼저 가니 마음이 참 얄궂다"고 말했다.
평균 연령 85세 할매(할머니)들로 구성된 8인조 그룹 수니와 칠공주로 활동한 서 할머니는 올해 1월 림프종 혈액암 3기를 진단받고,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서 할머니는 암 투병 사실이 알려지면 멤버로 활동하지 못할 것 같아 가족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매주 2회 연습에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 '한글주간 개막식' 무대에 오른 뒤 급격히 병세가 악화했는데, 6일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암이 폐렴에 전이됐다. 할머니는 15일 오전 8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87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광화문광장은 서 할머니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고인의 장녀 전경숙(65)씨는 "어머니가 많은 분의 추모 속에 가실 수 있어 다행"이라며 "랩을 통해 그동안 숨기고 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하신 것 같다.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으셨는데, 참 행복한 1년이었다"고 회상했다.
평소 할머니들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한덕수 국무총리도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한 총리는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글날 무대에 오르셨을 때만 해도 정정해 보이셨는데, 그때 이미 편찮으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며 "'나이가 들어버려서'라는 이유로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찡한 희망을 보여주신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고 추모했다. 서 할머니의 발인은 17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경북 영천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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