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오누이'를 펼친다...파도가 가고, 온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에 대해 다시 조곤조곤 얘기해 봅니다. 1993년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와 출판 편집 기획자 출신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로 글을 씁니다.
아이는 집 앞에 홀로 서 있다. 아이의 눈앞에는 피요르드의 새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하여 초록과 검정, 갈색의 산 그림자가 그대로 비친다. 물가에는 흰 보트가 한 척 묶여 있다. 가족들은 아직 모두 잠든 아침, 가장 먼저 잠이 깬 아이가 잠옷 차림 그대로 집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아침 햇살은 환하고 공기는 부드러우며 살짝 안개가 낀 듯이 축축하다. 아이는 마치 이 세상에 자신 혼자만 있는 것 같다. 아이는 바다로 가보고 싶다. 바다로 향하는 언덕은 키 큰 풀들이 무성하다. 아이는 풀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풀들은 아이의 키를 훌쩍 넘는다. 아이는 풀 사이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새파란 하늘에는 희고 섬세한 솜털 구름들이 가볍게 떠다닌다. 아이의 머리 위로 녹색의 뾰족한 풀 끄트머리가 멀리 구름과 하늘을 이리저리 조각 내면서 흔들린다. 아이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숨을 들이마시고, 숨을 내쉰다. 아이는 자신이 해안을 넘실대는 파도와 같다고 느낀다. 끊임없이 가고, 그리고 온다.
왜 어머니가 엄청나게 화를 내는지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두 번 다시 잠옷 차림으로 혼자 집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야단 친다.
그러나 아이는 바다로 가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다. 이번에 아이는 어린 누이동생의 손을 잡고 함께 길을 나선다. 아이는 네 살, 누이동생은 세 살이다. 오누이는 헝겊 인형을 들고, 장난감 바구니를 들고 바다로 간다. 푹푹 빠지는 모래흙을 밟으며, 길가의 산딸기를 따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간다. 그때 커다란 배를 가진 한 남자와 그의 아내가 아이들에게 다가온다. 너희들은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들 같구나 하고 남자는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아이들은 남자의 아내가 건넨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남자는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러 온다. 말없이 집을 나간 벌로 아이들은 당장 침대로 가야만 한다. 아이는 잠든 누이동생 곁에서 말한다. 너는 내 누이동생이야. 그러자 누이도 잠 속에서 대답한다. 오빠는 내 오빠야.
다음 날 아이는 다시 집 앞에 서 있다. 바다로 가고 싶다는 열망을 아이는 버리지 못한다. 아이는 홀로 바닷가로 내려가고 거기 매어 있던 보트에 올라탄다. 그러다가 발을 다치게 되고, 크게 긁힌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아이는 보트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 아이는 밧줄에 묶인 노를 풀어보려고 하고 마침내 성공한다. 환한 빛을 내리쬐는 태양이 눈부셔서 아이는 눈을 감는다. 파도가 보트의 뱃전에 찰싹이며 부딪힌다. 아이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아이는 마침내 집 안에 갇힌다. 부모는 외출하면서 누이만을 데려가고 아이는 집 안에 가두고 갔다. 그건 아이가 말없이 혼자 집을 나간 것에 대한 벌이다. 아이는 혼자가 되는 두려움 때문에 정신없이 문 손잡이를 돌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아이는 주먹으로 창문을 깬다. 아이의 손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온다. 아이는 부모의 침실로 달려가고, 아이의 손에서 솟아난 피가 부모의 방과 침대에 흩뿌려진다. 그리고 아이는 의사를 만난다. 나이가 많고 머리칼이 긴 의사는 담배를 피우면서, 차분하게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상처를 꿰맨다. 집에서 아이는 누이와 한 침대에 누워 있다. 누이는 잠이 들었다. 누이의 숨결은 파도와 같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가고 그리고 온다. 밖에서 부모님은 손님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는 혼자라고 느낀다. 잠든 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마치 파도처럼,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의 움직임처럼. 가고 그리고 온다. 오직 혼자서. 오직 파도처럼.
이러한 내용의 '오누이'는 내게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책이다. 10여 년 전 전업작가로 지내던 나는 잠시 동안 한 아동 청소년 출판사의 번역 검토 일을 하게 되었다. 출판사가 보내주는 도서를 읽고 번역을 고려한 리뷰를 작성하는 일이다. 사실 그것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전 조사 작업이겠지만 번역가에게는 가장 매력 없는 일거리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리뷰까지 쓰려면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그것으로 얻는 수입은 형편없기 때문이다. 책이 흥미롭다면 독서를 하면서 돈을 벌 수도 있는 참으로 좋은 일이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러던 중 나는 처음 들어보는 노르웨이 작가의 –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의 글은 당시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다 – 그림책을 리뷰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단번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지금껏 내가 아동용 그림책 중에서 인상적으로 읽은 작품은 독일 작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의 '여왕 기젤라'인데, 그 책이 흥미롭고 독특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반면 '오누이'는 잔잔한 바다처럼 고요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같은 여린 감수성의 책이었다. 평범한 가족의 평범한 그림, 그러나 이 세계와 고독을 막 알아가기 시작하는 아이의 내면에서 이는 파도, 어른의 세계와의 충돌.
나는 '오누이'가 시장에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긍정적인 리뷰를 보냈다. 하지만 출판사는 그 책을 번역하지 않기로 했고 나는 실망했다. 책은 에이전시를 통해 다른 출판사에 판권이 팔렸다. '오누이'를 꼭 번역하고 싶었던 나는 그 책의 판권을 구입한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고, 혹시 아직 번역가를 구하지 못했다면 내가 번역해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출판사가 의뢰한 번역가가 이미 책을 번역하는 중이라는 대답을 듣고 아쉽지만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리뷰를 위해 검토한 책은 다시 출판사로 돌려주어야 했으므로 나는 책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오랫동안 '오누이'를 마음에서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올해 독일의 출판사가 그동안 절판이던 그림책 '오누이'를 9월에 다시 출간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나는 9월을 기다렸다.
'오누이'는 2007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소개에 의하면 '오누이'는 6~8 세 아동이 대상이다. 그런데 독일 아마존의 리뷰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책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조카에게 읽어주려고 이 책을 구입했는데 조카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린아들이 이 책을 전혀 읽으려 하지 않는다는 내용들로, 대부분 이 책이 대상 나이의 아동들에게 즐겁게 읽힐 거라는 데 깊은 회의를 품은 리뷰들이다. 아, 하지만 책은 정말 아름답다. 아마도 그런 리뷰들은 우리가 "아동문학"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질문. 만약 아동을 독자로 상정하고 쓰인 어떤 문학작품이 아동도서로서의 효용가치가 기대보다 희소하다면, 그 책은 없어도 되는 것일까.
욘 포세는 소설과 아동문학, 시와 에세이를 썼지만, 그의 이름을 노르웨이를 넘어서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희곡이었다. 한국에는 비교적 늦게 알려졌지만 욘 포세는 이미 1990년대부터 전 세계에서 작품이 공연되는, 시인이자 극작가 헨리크 입센 이후 가장 유명한 노르웨이 작가로 꼽힌다. 지난해 이후로 욘 포세의 이름은 대중에게 유명해졌고 한국어로 번역서도 출간되었으므로 그의 소설을 읽은 독자도 많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는 시선과 같은 어느 순간, 놀랄 만큼 고요하고 소박한 언어, 그러나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리고 가는 들판의 바람처럼. 욘 포세는 어린 시절 큰 사고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두는 경험을 했다. 그때 그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멀리서 자신이 사는 집을 바라보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마치 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자신이 있던 자리를 뒤돌아보듯이. 일곱 살에 겪은 이 체험은 일생 그의 글쓰기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는 제목이 '오누이'로 번역되었지만 이 책의 원제는 Søster, '누이'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나는 이 책의 원제목에 먼저 매료되었다. '오누이'라는 제목이라면 누구나 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만한 반면, '누이'라는 제목이었다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다시 한번 표지의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그 쓸쓸하고도 아름다우며 사람 없는 바다의 풍경 앞에서, 왜 이 제목이 '누이'일까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은 누이의 숨 혹은 파도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고 그리고 간다. 이것은 파도와 같은 책이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