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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은 노조 쟁의권만 강하게 보장'...경총 보고서 같은 경사노위 진단

입력
2024.10.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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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1억 원 넘는 경사노위 연구회·자문단
결론 비공개하다 강득구 의원 질의에 공개
출범 당시부터 노사는 배제해 편향성 논란
결과 보고서도 경영계에 치우친 관점 실려

지난해 2월 8일 서울 중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관계 제도 관행 개선 자문단' 발족 회의에서 공동 단장을 맡은 조준모(왼쪽 두 번째)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2월 8일 서울 중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관계 제도 관행 개선 자문단' 발족 회의에서 공동 단장을 맡은 조준모(왼쪽 두 번째)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우리 노조법은 노사 대등성에 맞게 규율되지 않고 노조에게만 쟁의권 및 쟁의 수단을 강하게 보장하고 있으므로 노사 간의 실질적 균형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 60쪽)

'우리 법은 노조의 단체행동권 보호라는 명분하에 유례를 찾기 힘든 대체근로금지 규정을 두어 사용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 (같은 보고서 70쪽)

마치 경제단체의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 관행 개선 자문단'이 낸 보고서 중 일부다.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한 수백억 원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잦고, 간접고용·하청 노동자는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진단이다. 자문단은 발족 당시부터 위원 구성과 의제 설정을 두고 편향성 비판을 받았는데, 최근 뒤늦게 공개된 보고서를 두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경사노위는 지난해 2월 노사관계 자문단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 7월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발족했다. 이들 회의체는 노사는 빠진 채 정부가 임명한 전문가들만 참여해 노동계는 '답정너식(답이 이미 정해진) 연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관련 기사 : 경사노위 자문단, 대체근로 허용 등 논의...노동계 "편향적 구성" 비판)

경사노위는 3개 회의체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도 계속고용 연구회를 제외하고는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다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지난달 24일 뒤늦게 정책연구보고서를 홈페이지 '연구용역 보고서'란에 공개했다. 노사관계 자문단에는 5,549만 원, 이중구조 연구회에는 5,789만 원, 계속고용 연구회에는 2,719만 원의 예산이 각각 사용됐다.

올해 1월 24일 서울고법은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실질적 사용자'이므로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에 직접 응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 판결과 동일한 취지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인근에서 판결 소식을 들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회원들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뉴스1

올해 1월 24일 서울고법은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실질적 사용자'이므로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에 직접 응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 판결과 동일한 취지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인근에서 판결 소식을 들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회원들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뉴스1

뒤늦게 공개된 3개 보고서 중에서도 특히 '노사관계 보고서'에는 경영계의 관점에 치우친 대목이 여럿이다. '산업 현장의 불합리한 노사관계를 시급히 바로잡고 기업 및 국가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현행 대체근로 금지 규정을 입법 정책적으로 재검토해 볼 필요'(55쪽)가 있다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은 경영계의 숙원 과제인 반면 노동계는 파업권 자체를 형해화할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한다.

보고서는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을 보다 넓게 인정한 CJ대한통운 1심 판결을 두고도 "법원이 합헌적인 법령과 제도에 의한 질서를 무시한 채 자신만의 정의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다른 국가기관에 이를 따르도록 강제하여 입법권을 행사하기에까지 이르고 있다"(53쪽)고 평하기도 했다. CJ대한통운이 간접고용 노동자인 택배기사들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게 판결의 골자인데, 항소심에서도 1심 판단이 유지됐다. 많은 논란과 파장을 불렀던 판결인 점을 감안해도 사회적 대화를 위한 '균형 잡힌 시선'과는 거리가 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대체근로가 허용되면 헌법 제33조(노동3권)가 무력화되는데 이 같은 안건을 스스럼없이 꺼내는 것 자체가 한쪽에 치우친 논리들"이라며 "재산권은 이미 민법, 상법으로 충분한 보장을 받고 있어 과도하게 침해된다는 근거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당초 경사노위는 전문가 중심 회의체에서 우선 노동 관련 개선 사안을 논의한 뒤 사회적 대화가 복원되면 그 논의 결과를 '대화 밑바탕'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사회적 대화에 복귀한 한국노총이 '노사가 배제된 채 나온 결론은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1억4,000여 만 원의 예산이 투입된 보고서들도 용도를 상실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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