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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동 떠나 논현동서 수억 수익… 점집도 '강남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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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을 잇는 원초적 존재, 무당은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고 범죄의 온상이 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한국일보는 석 달간 전국의 점집과 기도터를 돌아다니며 우리 곁에 있는 무속의 두 얼굴을 조명했다.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공식적으론 어디에도 없는 무속의 현주소도 파헤쳤다.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무속이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모색했다.
서울에서 점집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유튜브로 점사를 보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지만, 점집이 몰려 있는 지역은 공통점이 있었다. 무속인들은 유동 인구가 많고 돈이 몰리는 지역을 선호했다. 역사적으로 한이 서린 곳과 '영험한' 산과 가까운 지역도 밀집도가 높았다.
한국일보는 네이버에 점술업(신점·사주·타로)으로 등록된 1만5,853개 주소 데이터(8월 1일 기준)를 추출한 뒤, 지리정보 분석업체 ‘비즈 GIS’가 제공하는 ‘X-ray Map’ 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해 점집 주소를 지도상에 점으로 찍어 분석했다. 반지름 2.45㎞ 원(면적: 18.9㎢)을 기준으로 서울에서 점집이 많은 곳을 조사했더니, 논현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285개가 몰려있어 가장 많았다. 이어 △은평구 역촌역 인근 214개 △동묘-신당역 인근 193개 △미아사거리역 인근 182개 △홍대입구역 인근 148개 순이었다.
점집 주소는 데이터 분석 전문가에 의뢰해 네이버 지도 크롤링(검색 엔진 로봇을 이용한 자동데이터 수집 방법) 방식으로 추출했다. '운세' '점집' 두 키워드로 검색했고, 누락되거나 중복된 정보가 없는지 취재진이 여러 차례 확인해 전체 데이터를 완성했다. 본보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논현·은평·신당·미아·홍대 주변을 2주 정도 돌아다니며 무당 20명을 인터뷰했다.
광역시도 기준으로는 경기도가 3,526개로 가장 많았으며 서울(2,870), 부산(1,321), 대구(1,019) 순이었다. 지역별 인구를 감안하면, 광주·대구·울산·부산 등 지방 대도시에 점집이 많았으며 시군구 단위로는 수원특례시가 459개로 가장 많았다.
서울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3번 출구에서 먹자골목을 지나면 신축과 구옥이 섞인 빌라촌이 나온다. 술집과 메이크업숍이 즐비한 이곳엔 점집이 몰려 있지만 무당집을 상징하는 백기와 적기는 없다. 백기는 점을, 적기는 굿을, 둘 다 걸려 있으면 점과 굿을 모두 한다는 의미다. 깃발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당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거나, 드러낼 필요가 없거나, 건물주 허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점집은 대부분 상가 2~4층이나 오피스텔에 자리 잡고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무당 간판 5개가 모여 있는 꼬마빌딩에서 만난 60대 무당은 "한강 북쪽에는 여러 곳에 분산돼 무속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남쪽에선 논현동이 거의 유일하다"며 "나는 예약한 손님만 받고 무작정 찾아오면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얼마나 돈을 버는지 묻자 "1년에 1억5,000만 원 정도 수익을 내고 남는 시간에는 기도한다"고 밝혔다.
논현동에선 고수익을 내는 무당이 적지 않았다. 열흘에 손님 100명 정도만 받는다는 또 다른 무당은 "경기 좋을 땐 두 달씩 예약이 밀렸고, 지금은 한 달 정도 밀렸다. 모두 입소문으로 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판은 광고물 제작하는 신도가 무료로 걸어준 거고, 대전에서 운영하는 신당은 간판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자에게 점사비로 10만 원을 불렀다. 무당 말대로라면 1년 수익이 수억 원에 달한다. 그는 "의사, 변호사 안 부럽다"고 했다.
이곳에 찾아오는 손님은 수준이 다르다고 했다. 정재계 인사부터 연예인까지 다양하다는 게 무당들 얘기다. 삶에 대한 고민이 많고 말벗이 필요한 2030 청년들과 강남 유흥업소 여성 직원들도 주요 고객이다. 유명 인사들이 찾는다는 한 점집에선 "강남 고객들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주도 대체로 좋다"며 "점값으로 흥정하지 않는데, 부부가 점 보러 오면 군말 없이 20만 원 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땅값이 오르면서 무당집은 점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특히 낡은 건물을 부수고 신축하면 쫓겨나는 무당들이 적지 않았다. 논현동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점집을 내고 싶어 하는 무당이 두 분 있는데, 세를 못 구하고 있다"며 "점집이 외관상 보기가 안 좋으니 세입자와 건물주 모두 싫어한다"고 귀띔했다. 깃발을 달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 다른 중개인은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줄어들고 직장인이 많아진 것도 점집이 줄어든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길음동에선 '미아리 텍사스' 언니들이 많이 왔는데 지금은 손님 자체가 별로 없어."
45년 차 무당 백현옥(75)씨는 길음동이 재개발되면서 3년 전 미아사거리역 뒤편으로 옮겨왔다. 신도들이 근처에 살아 멀리 옮기지 않았고, 지역 토박이라 멀리 가고 싶지도 않았다. 시장 골목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신당을 세운 백씨는 전화 점사도 하지 않는다. 한때 일본 공영방송 NHK가 백씨의 '이북 굿'을 취재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지만, 지금은 몸이 좋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다.
백씨는 미아동 무당촌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2000년대 가장 장사가 잘됐지만, 요새는 손님이 거의 없다"며 "언론에서 무속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무당 범죄 보도가 계속 나가면서 신뢰가 떨어졌다. 나처럼 진솔하게 상담해주는 무당들만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미아동 인근에는 예전부터 무당집이 많았다. 1956년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6·25전쟁 직후 보릿고개를 그린 노래)가 유행할 정도로 미아는 가난한 서민들이 터를 잡은 한 많은 곳이었다. 무당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점집을 지키던 무당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은퇴하고 있고,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떠나기도 했다. 무교(巫敎) 단체인 경천신명회에 따르면, 현재 미아동 무당은 잘나가던 시절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미아동 인근인 성북구 돈암동에는 무당촌 이외에 시각장애인 역술가들이 모인 사주풀이 점성촌도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역술원이 70여 곳이나 됐지만, 지금은 고령화의 영향으로 폐업이 잇따라 20곳도 남지 않았다.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강태봉 관장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정부 지원이 안마에 집중된 데다, 역학은 진입장벽이 높아 창업하려는 사람도 거의 없다"며 쇠퇴 이유를 설명했다.
이곳에서도 점집은 환영받지 못한다. 미아동에서 점집 중개 전문가로 통하는 이선이 롯데부동산 이사는 "무당집이 들어서면 다음 세입자를 받기 힘들어 임대인들이 기피한다"며 "임대인 몰래 점집을 차렸다가 쫓겨난 무당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월세가 150만 원이면 20만 원을 더 얹어주는 조건으로 겨우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논현동과 미아동을 비교하면 무당 사이에서도 빈부격차가 크다. 경천신명회 강북지역 관계자는 "요즘엔 온라인으로 점을 많이 봐서, 방문객은 예전에 비해 3분의 1도 안 된다"며 "성북구도 하월곡동과 장위동이 모두 개발되면서 무당들이 경기도나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전했다. 하월곡동에서 허름한 단층 건물에 점집을 차린 무당(49)은 "잘되는 무당들은 대부분 강남 오피스텔로 가버린다"며 "월세살이 하는 무당들은 계속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당들이 점집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신빨' 잘 받는 곳이다. 은평구 일대가 그런 곳이다. 북한산, 북악산, 백련산 등 '영험한' 산이 많고 무속인을 배척하는 분위기도 덜하다. 23세에 신내림을 받았다는 한 무당(31)은 "신당 차리려고 터가 좋고 인근에 산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은평구가 딱 맞았다. 무당골이 있었던 동네라서 나이 드신 임대인들은 집을 신당으로 잘 내어준다"고 설명했다.
전통시장이 가까이 있는 것도 무당들이 은평구를 선호하는 이유다. 연신내역 근처에서 만난 무당은 "무속인들은 떡, 나물, 과일이 아무리 비싸도 사야 한다"며 "떡도 6만~10만 원 단위로 구입하기 때문에 무당들이 인근 떡집을 먹여살린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은평구 일대에는 대조시장과 연서시장, 응암시장 등 전통시장이 있다.
전통시장에서 무당들은 귀한 고객이다. 청량리 경동시장 인근에서 무속용품판매점(만물상)을 운영하는 윤모씨는 "무속 의례는 단순히 종교 행위를 넘어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며 "무당들이 의례를 진행할 때 필요한 음식, 의상, 용품 등을 준비하면서 여러 업종이 함께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무속 신앙이 전통시장 활성화와 무관치 않다는 의미다.
신의 계시도 점집을 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본보가 만난 무당 3명은 "신이 그곳에 가라"고 해서 해당 지역에서 점집을 열었다고 밝혔다. 강북구 삼양동 인근에 살다가 1990년대에 중구 신당동으로 점집을 옮긴 이기영(71)씨는 "신내림 받고 나서 자꾸 신당동으로 가고 싶었는데, 신께서 이곳으로 가라고 귀띔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MZ세대가 많이 찾는 마포구 서교동(홍익대 근처) 일대에도 점집이 몰려 있다. 특히 청년층에 익숙한 '사주타로' 가게가 많았는데,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이곳의 특징은 행인도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점이다. 취재진이 찾아간 한 사주타로 카페에선 키오스크로 원하는 점술 방식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신내림을 받은 지 2년 됐다는 한 무당(30)은 "학생들이 커플 궁합 등 타로나 사주를 보러 많이 와서 신점도 함께 봐주고 있다"며 "무속인도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용은 간단 신점 2만 원, 심층 신점 5만 원으로 젊은층을 겨냥한 만큼 저렴하다고 주장했다.
염은영 점복문화연구소장은 "불확실성이 커진 현대사회에서 점복은 심리적 안정과 문제 해결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한다"며 "점복을 개인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 현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팀장 : 이성원 기자
취재 : 손영하·이서현 기자, 이지수·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하상윤·정다빈 기자
영상 : 김용식·박고은·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이란희·김가현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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