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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러 헤스, 알리시아 데 라로차… 손열음이 불러낸 위대한 여성 피아니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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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공연장마다 세계적 클래식 음악가의 연주회가 넘쳐나고 공연 관람을 목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라이브 무대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발매된 20세기 음악가들의 연주에 감탄하며 귀 기울이는 애호가가 많았다. 공연을 라이브로 접할 기회가 늘고 현장 경험 위주의 감상 방식으로 변해가는 요즘, 과거 연주자들의 음악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최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더 피아니스트(The Pianists)' 공연이 있었다. 손열음은 음악가 사이에서도 유명한 '음악 애호가'다. 악보나 앨범, 관련 문헌까지 읽고 듣고 흡수하며 음악에 대한 관심사를 다양한 기획의 연주 무대로 소개해왔다. 이번 공연에서는 음악사에서 특별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이름이 소환됐다.
1부에서 연주한 베토벤, 체르니, 리스트, 질로티, 라흐마니노프는 스승과 제자로 연결되었던 당대 '피아니스트의 계보'였다. 21세기에는 악보로서 존재하는 작곡가들이지만 손열음은 이들의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프로그램북에 적었다. 2부에서는 라흐마니노프, 마이러 헤스, 알리시아 데 라로차, 완다 란도프스카,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 프리드리히 굴다, 얼 와일드가 작곡, 편곡한 곡을 연주했다. 이들은 연주 기록과 스튜디오 앨범이 남아 있는 20세기 대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 교육자였다. 최고의 음악을 남겼지만 요즘은 예전만큼 이야기하고 감상하지 않는 연주자들이다. 손열음은 멀어진 옛 친구들 이름을 부르듯 앨범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의 작곡과 편곡을 찾아 연주했다. 특히 여성 연주자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영국 출신의 마이러 헤스(1923~2009)는 맑고 우아하고 유연하고 고풍스러운 감각으로 바흐, 슈베르트, 모차르트, 슈만, 베토벤, 브람스에 정통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스테판 코바세비치의 스승이었고, 재즈에도 영향을 끼쳤다. 헤스 편곡의 바흐 코랄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은 지금도 피아니스트들이 앙코르 무대에서 자주 연주한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알리시아 데 라로차(1923~2009)는 그래미상을 네 번 받았다. 바흐, 헨델, 스카를라티, 슈만 해석으로도 유명하지만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파야, 솔레르 등 스페인 작곡가들의 작품을 탁월하게 연주해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에 안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유롭게 다룬 해석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 라로차의 이름은 애플뮤직 클래시컬 앱의 손열음 플레이리스트 '메노 모소' 첫 번째 트랙에도 등장한다.
폴란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완다 란도프스카(1879~1959)는 피아노 등장 이후 잊혀가던 옛 악기 쳄발로를 바흐 연구와 함께 세상에 널리 알렸다. 연주는 물론 작곡, 음악 연구, 제자 양성 분야에서도 전인적 음악가로 활약하며 세계 최초로 음악학교에 쳄발로 학과를 만들고, 정격 연주(작곡 당시 음악적 논리와 어법을 그대로 재현하는 연주 방식) 해석에 불을 지폈다.
타티아나 니콜라예바(1924~1993)는 20세기에 대활약한 수많은 러시아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건반을 짚는 힘과 견고함은 여느 여성 피아니스트와 달랐고 바흐와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해석에 탁월했다. 쇼스타코비치는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쓰고 니콜라예바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한국을 즐겨 찾는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타이틀보다 니콜라예바의 애제자였다는 수식어로 더 큰 주목을 받으며 데뷔했었다.
손열음은 시대가 인정하는 모차르트 해석가이지만 애호들이 숱하게 들은 20, 21세기 작품들을 즐기듯 연주하고 앨범에 담아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길이 만들어졌다. 손열음의 무대로 관객들은 듣기의 외연이 넓어지고, 젊은 음악가들은 연주 레퍼토리 선정의 자유를 얻었다. 호기심을 따라 읽고 흡수한 수많은 악보, 문헌 덕분에 '더 피아니스트'와 같은 음악회가 마련됐다. 앙코르 역시 피아니스트였던 쇼팽, 라흐마니노프, 파데레프스키, 리스트였다. 공연 후 손열음은 연주의 완성도를 위해 특별히 선택한 피아노 '파지올리(FAZIOLI F308)'의 조율사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무엇 하나 간절하지 않았던 것이 없었던 무대는, 피아노와 피아니스트에 대한 헌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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