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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놔도 안 팔려"…한전·발전자회사, 헐값에라도 자산 매각하려는 속사정은

입력
2024.10.17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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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발전자회사, 2026년까지 재무구조 개선
2023년까지 유휴 부동산 등 5,000억 원 매각
업계 "지금 상황선 차라리 안 팔리는 게 이득"

전남 나주시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 사옥 모습. 연합뉴스

전남 나주시에 있는 한국전력 본사 사옥 모습. 연합뉴스


# 한국전력은 2월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경기본부 별관을 도시가스 사업회사 삼천리에 261억 원에 팔았다. 토지와 건물 면적은 각각 3,408㎡, 3,424㎡로, 입찰 3회차 만에야 감정평가 금액보다 1억 원 높은 금액에 가까스로 낙찰됐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입찰 공고를 두 차례 냈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 및 공사비 급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참여한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전이 가진 수도권의 알짜 부동산도 유찰이 거듭되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전의 서울 동부지사 사옥(최저 입찰가 237억 원)은 6회, 경기북부본부 사옥(186억 원)과 경기북부본부 별관(89억 원)은 8회, 서울배전스테이션 부지(188억 원)는 2회 유찰됐다. 비수도권 상황은 이보다 더 심각해 제주본부 삼양동 사택(41억 원)의 경우 유찰 횟수가 무려 17회에 달하는 등 전국의 9개 부지 매각을 시도했지만 살 사람을 찾지 못했다.

200조 원 넘는 부채로 재무 위기를 겪는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이 팔 수 있는 자산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지만 입찰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 1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전과 발전 자회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이들 기업의 목표액 대비 자산 매각 실적은 평균 36%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은 올해 3,722억 원의 자산 매각을 목표로 잡았으나 428억 원을 팔아 이행률이 11.5%에 머물렀다. 한국남부발전은 올해 목표 586억 원 중 7억5,600만 원을 매각해 발전 자회사 다섯 곳 중 달성률이 1.3%로 가장 낮았다. 또 △한국남동발전 12.3% △한국중부발전 22.4% △한국동서발전 68.2% 순이었다. 한국서부발전은 발전 자회사 중 유일하게 목표액(14억2,000만 원)을 모두 채웠지만 부동산 같은 자산이 아닌 폐전선·고철 등 폐기물을 팔았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재정 건전화 명분으로 공공자산 헐값 매각 안 돼"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자산 매각이 뜻대로 실행되지 않는 이유공공 기관들이 물량을 쏟아내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 및 높은 금리로 입찰 참여 기업이나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시장 상황 탓에 감정평가로 정한 최저 입찰가액보다 높은 액수의 낙찰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11월 팔린 한전의 세종지사 사옥은 유찰 2회 만에 최저 입찰가인 117억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세종 신도심과 10㎞ 거리이며 비어 있어서 개발이 용이하다고 평가됐던 곳이다.

발전 자회사는 흑자를 내며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역할을 하는 해외 사업도 내놓아야 했다. 중부발전은 2023년 12월 '미국 볼더3 태양광 발전 사업' 지분을 공동 사업자인 한화에너지에 9억 원에 팔았다. 4개 발전 자회사들이 보유한 호주 물라벤 광산 지분 5%와 발전 5개사가 가진 인도네시아 바얀 광산 지분 20%도 적지 않은 수익을 냈지만 내년과 내후년 매각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전과 5개 발전 자회사는 2022년부터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하면서 2026년까지 1조3,000여억 원 규모의 자산 효율화 목표를 제시했다. 연도별로 목표 금액을 세우고 세부 이행 계획도 내놨다. 문제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 재무 건전성을 위해 매각을 서두르다가 공공 자산을 헐값에 파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미래 가치 상승이나 수익성이 기대되는 자산의 경우 '빨리 팔수록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해외 사업이나 부동산은 안 팔리는 게 낫다"며 "적정 매각 시기를 찾기 위해 자산 매각 계획 중 상당 부분을 2026년쯤으로 미룬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짜 자산을 팔아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제도 자체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가 이하 전기요금 판매로 생긴 한전의 적자를 자산 매각으로 메우려다 장기적으로 손실만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부동산 가치는 장기적으로 오른다"며 "전기요금 때문에 생긴 손실을 전기요금으로 풀지 않고 공공자산 매각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가는 오히려 손해만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김원이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한전 자회사 자산 무조건식 매각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경영 정상화를 위한 종합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나주예 기자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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