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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사람을 닮아야 하나… 로봇IoT, 소프트로봇이 대안 될 수도

입력
2024.10.18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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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기술 정점, 휴머노이드여야 할까]
인간 닮으면 범용성·효율성 높지만
막대한 비용, 불쾌한 골짜기 넘을까
사람 덜 닮은 중간 단계로 실용성 ↑
재료·소통 등 인간 요소 일부 적용도

편집자주

로봇은 인간을 얼마만큼 닮을 수 있을까. 한국일보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국제제어로봇시스템학회를 찾아 로봇 기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인공지능을 만난 휴머노이드 로봇의 미래를 진단한다.

9월 27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작동 중인 로보틱 도서관 시스템 '콜래봇'. 책장과 책상, 의자, 조명 등으로 구성된 이 시스템은 다수의 로보틱 제품 간 협업으로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을 제공한다. 박시몬 기자

9월 27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작동 중인 로보틱 도서관 시스템 '콜래봇'. 책장과 책상, 의자, 조명 등으로 구성된 이 시스템은 다수의 로보틱 제품 간 협업으로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을 제공한다. 박시몬 기자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는 '콜래봇'이라는 일종의 '로봇 사서'가 있다. 스마트폰에 전용 앱을 깔고 책을 검색하니, 그 책이 꽂혀 있는 책장 한 칸이 쓱 앞으로 튀어나왔다. 책장 높이까지 손이 닿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찰나, 바닥 한쪽에서 발 받침대가 다가왔다. 그 위에 올라서서 책을 꺼내 열람하러 가는데, 발 받침대가 자신에게 책을 올려두라는 듯 졸졸 쫓아왔다.

KIST는 도서관 내부 물건들에 로봇 기술을 입히고, 사람과 소통하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콜래봇을 '로보틱 도서관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은 없다. 하지만 로봇이 사람을 닮든 안 닮든 자동으로 책을 찾아주거나 옮겨주게 하는 기술의 본질은 같다.

휴머노이드가 인공지능(AI)을 만나면서, 머지않아 영화에서처럼 일상을 함께하는 인간형 로봇이 현실화할 거란 기대가 크다. 그러나 냉소와 거부감도 적지 않다. 기술에 대한 흥미나 과시 이상으로 휴머노이드 개발이 꼭 필요한지를 놓고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별 안 될 만큼 완벽한 휴머노이드가 과연 로봇 기술이 꼭 도달해야 할 지점일까.

"2, 3년 내 획기적 진전"... 다음은 캐즘?

곽소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이 9월 27일 서울 성북구 KIST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곽소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이 9월 27일 서울 성북구 KIST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로봇 연구자들은 휴머노이드의 가장 큰 장점으로 범용성과 효율성을 꼽는다. 이는 로봇의 궁극적인 목표인 인간 삶의 질 향상과도 맥을 같이한다. 콜래봇을 개발한 곽소나 KIST 선임연구원은 "인간의 형상으로 인간의 행동을 모사하는 휴머노이드는 별다른 환경과 도구의 변화 없이도 현장에 투입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고, 익숙한 모습이라 위화감이 크지 않아 인간과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계가 인간과 같은 형태면 지시를 입력하거나 교정을 명령하는 과정이 좀더 편하다. 인간이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부여하기가 다른 형태의 로봇보다 용이하다는 뜻이다. 사람과 비슷한 존재를 인공적으로 빚어내려는 재현 욕구 역시 과학자들이 휴머노이드를 쉽게 포기 못 하는 이유다. 조백규 국민대 미래모빌리티학과 교수는 "예술 작품도 그렇듯 사람은 사람과 닮은 뭔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는 듯하다. 이런 게 로봇 기술에도 적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게티이미지뱅크

완벽한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데는 걸림돌이 많다. 특히 시간과 비용이 문제다.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함에도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휴머노이드를 실현한다 한들, 얼마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많은 휴머노이드 연구자와 개발 프로젝트가 지난 50여 년간 계속 부침을 겪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도 AI 발달로 기존 멀티모달 데이터를 능가하는 물리적 학습이 가능해지고 있는 만큼 기술적으론 완벽한 휴머노이드에 더 빠르게 가까워질 거란 예상이 힘을 얻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향후 2, 3년 안에 휴머노이드가 획기적인 진전을 보일 거라고 전망한 근거도 여기에 있다.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 현상도 여전한 걸림돌이다. 인간을 닮은 기계를 향한 기술적 진보를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인간을 흉내 내는 존재에 대한 불편함과 거부감을 쉽게 떨쳐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범용 휴머노이드가 시장에 나왔을 때 대중의 반응이 환호와 호기심에서 그칠지, 적극적 구매자나 사용자가 늘지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예상치 못한 사고라도 나면 휴머노이드 역시 '캐즘1'에 맞닥뜨릴 수 있다.

궁극은 휴머노이드... 유연한 기술로 연착륙 이끌어야

2일 대전 유성구 레인보우로보틱스 사무실에서 이동형 양팔로봇이 작동하고 있다. 대전=정다빈 기자

2일 대전 유성구 레인보우로보틱스 사무실에서 이동형 양팔로봇이 작동하고 있다. 대전=정다빈 기자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휴머노이드를 바라보는 로봇과 AI 기술의 방향을 되돌리긴 어려울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사람과 똑같은 완벽한 로봇을 선보여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가령 다리 대신 바퀴가 달리거나, 혹은 상체만 있는 형태로라도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실용적인 제품을 '중간 단계' 휴머노이드로 보급하는 식이다.

정해진 임무에 특화한 기존 로봇에 인간 닮은 요소를 부분적으로 담으며 발전시키는 방법도 있다. 재료나 메커니즘을 바꿔 인체처럼 부드럽게 작동하게 만드는 소프트 로보틱스, 로봇 간 연결성을 높이는 로봇사물인터넷(IoRT)이 좋은 예다. KIST의 콜래봇이 바로 IoRT 기술이다. 송가혜 KIST 선임연구원은 "좁은 공간이나 우주·심해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상황에 따라 본체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소프트 로보틱스도 최근 유망하다"고 소개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로봇 '소프트 그리퍼'. 물체를 잡을 때는 오므려지고(왼쪽), 놓을 땐 펼쳐지는(오른쪽)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이다. KIST 제공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로봇 '소프트 그리퍼'. 물체를 잡을 때는 오므려지고(왼쪽), 놓을 땐 펼쳐지는(오른쪽) 소프트 로보틱스 기술이다. KIST 제공

휴머노이드의 완성이 다른 로봇의 종말을 뜻하진 않는다. 곽 연구원은 "인간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관점에서 휴머노이드와 기존 로봇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각각에게 부여할 역할이 무엇인지 전략을 세워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1 캐즘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이 초기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대중 사이에서 확산하다 수요가 줄거나 정체되는 현상. 원래는 지층 사이에 생긴 큰 틈을 뜻하는 지질학 용어인데, 1991년 나온 미국 비즈니스 컨설턴트 제프리 무어의 책 '캐즘을 넘어서'에서 시사경제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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