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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 점거·오밤중 "파이팅"… 러닝크루 민원에 '모임 제한' 칼 빼든 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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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은 뛰라고 있는 거잖아요. 그럼 고속도로 가서 뛸까요?"
"못 뛰게 하는 게 아니잖아요."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구 반포종합운동장. 서초구청 관계자와 여러 명이서 함께 무리 지어 달리는 모임을 뜻하는 '러닝 크루' 회원들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서초구가 전날부터 반포종합운동장 내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이용규칙을 시행하자, 일부 회원들이 항의한 것이다. 러너들의 훈련 명소로 꼽히는 이 운동장에는 1시간 동안 9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뛰고 있었다. 대부분 수십 명 단위 모임으로, 바뀐 지침을 모르고 왔다가 낭패를 봤다는 표정이었다.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달리기 소모임 러닝 크루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이들이 산책로나 러닝 트랙 등을 아예 점거하다시피 길을 막고 한밤중에도 "파이팅" 등을 외쳐 피해를 준다는 지적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거나 심지어 차도에 수십 명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들도 대응에 나섰다. 함께 달리는 인원 숫자를 제한하는 식인데, 이런 식의 제재는 과도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날 반포종합운동장엔 러닝 트랙 이용규칙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현수막에는 △5명 이상 달릴 경우 개인 간 간격 2m 이상을 유지해야 하고 △러닝 유료 강습으로 판단될 경우 퇴장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오후 7시가 지나자 20~30명 규모의 러닝 크루들이 서서히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간중간 10여 명이 거리를 두지 않고 러닝을 이어나가자, 관리사무실에서 "간격을 유지해달라"는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구청 측 계도에 따라 알아서 4명씩 조를 이뤄 뛰며 질서를 유지하는 러닝 크루들도 있었다.
서초구와 비슷한 규칙을 도입하는 지자체는 늘고 있다. 서울 내에선 송파구, 성북구 등도 산책로 등지에 3인 이상 달리기 자제, 한 줄 뛰기 등의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을 게시했다. 경기 화성시는 동탄 호수공원 산책로에 아예 러닝 크루 출입 자제를 권고했다. 민원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게 지자체들 설명이다. 실제 서초구는 지난달에만 반포종합운동장 러닝 트랙 관련 민원 9건을 접수했다.
일부 러닝 크루 회원들은 지자체의 단체운동 제한이 '월권'에 가깝다며 비판한다. 러닝 크루 운영자 김보건(37)씨는 "다른 운동장도 신고가 다 들어가고 경비원이 가로막아 달릴 곳이 없다"며 "우리에게만 잘못을 지우는 치우친 규정 같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러닝 크루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러닝을 즐긴다는 30대 전모씨도 "일부 안 좋은 사례만 부각해서 규제를 과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러닝 외에도 생활체육을 즐기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이런 충돌 상황이 자주 빚어진다. 서울시의회는 등산객들의 민원을 고려해 숲길로 지정한 등산로에 산악자전거 출입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올해 6월 통과시켰다. 이에 산악자전거 동호회원들이 "라이더들도 등산객과 동일하게 생활체육을 즐기는 시민인 만큼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2018년에는 경기도가 '남한산성도립공원 내 자전거 등 출입 제한 공고'를 내자, 자전거 동호인들이 국민 청원 게시판을 통해 헌법에 위배되는 '초법적' 행정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무조건적 규제보다는 다양한 이해집단이 공존할 수 있게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해 당사자들의 처지를 조율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드는 게 중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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