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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공짜라도 못 버텨" 대통령상 받은 서점도, 문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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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표 지역 서점인 계룡문고가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계룡문고는 개인이 운영하는 대전의 유일한 대형 서점으로, 1996년 문을 연 이래 지역 문화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문경서적과 대훈서적이 2000년대에 문을 닫은 뒤 하나 남은 대전의 향토 서점이었다. 유통망 변화, 독서 인구 감소로 서점 폐업이 가속화하면서 '작가-출판사-서점-독자'로 이뤄지는 독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계룡문고는 지난달 27일 대표 명의의 안내문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든 살려보려고 몸부림치며 갖은 방법으로 애써 왔지만 더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해 영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입점해 있던 대전테크노파크 건물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었다. 이동선(61) 계룡문고 대표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대전테크노파크도 최선을 다하고 많이 배려해 줬다"며 "이전에도 고비가 있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워낙 타격이 컸고, 매출이 너무 떨어져 이제는 임대료를 공짜로 해 줘도 감당할 수 없겠더라"고 말했다.
계룡문고는 지역민에게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 이상의 장소였다. 중고책 판매 코너를 만들어 여기에서 나온 수익으로 지역 미혼모 가정을 도왔다. 책이 상할 염려에도 아이들이 엎드려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을 만들었다. 지역 유치원, 초등학교 등 학생들의 견학 장소로 쓰였다. 북토크, 전시를 포함한 각종 문화 프로그램도 열렸다. 이 대표는 '책 읽어주는 아빠모임'을 이끌었고, 서점에 놀러온 아이들이 '질문쟁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토니 로스의 그림책 '왜요'를 자주 읽어줘 '왜요 아저씨'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 대표는 독서문화 증진을 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대한민국 독서대전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기도 했다.
대전 지역 잡지 월간 '토마토'의 이용원 편집장은 "계룡문고는 잘 보이는 매대나 별도 코너를 만들어 지역 출판물을 배치해 줬다"며 "지역 출판사로선 대형 서점에선 기대할 수 없는, 독자가 우리 책을 우연하게 발견할 수 있는 서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견학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이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보고,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는 공간이었는데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상실감이 크고 착잡하다"고 말했다.
대전에 위치한 이유출판의 유정미 공동대표(대전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는 "계룡문고는 원도심 중앙로에 있어서 서울로 말하면 광화문 교보문고 같은 상징적 공간"이라며 "대전테크노파크가 시 소유이니 시가 운영하며 위탁을 주는 방법 등 적극적으로 찾았으면 묘안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너무 경영 논리로만 풀어버린 게 아쉽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유출판은 몇 달 전 계룡문고에서 김미옥 작가의 '미오기전' 출간 기념 북토크를 열었다.
젊은 층 사이에서 '텍스트 힙'이란 용어가 뜨는 건 고무적이지만, 이조차 말 그대로 '유행'일 뿐 아직 독서가 '문화'로 정착되기란 갈 길이 멀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서점 개수는 2,484개로 2년 전보다 44개(1.74%) 줄었다. 지난해 종이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은 10명 중 3명(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불과하며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임대료는 부차적이고 근본적으로 교육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며 "지역화폐나 도서구입비를 활용해 아이들이 서점을 산책가듯 자주 가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낙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책을 유통하는 자체가 고도의 문화 공공 행위"라며 "대전은 대학과 공공기관이 많아 확실한 소비 시장이 존재함에도 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건 지식 생태계가 무너지는 신호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정책은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영유아 대상 책꾸러미 지원 사업인 '북스타트' 사업 등이 포함된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 예산 60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 편집장은 "우리 사회가 독서가 갖고 있는 인문학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정책이든 캠페인이든 공공에서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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