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단독] 검사들마저 '공직 엑소더스'... 8월까지 100명이 '탈검찰'

입력
2024.10.01 04:30
10면
구독

8월까지 100명… 특히 평검사 높은 퇴직률
피해자나 고소고발인 협조 없인 수사 차질
사건 부담→퇴직 증가→사건 지연 '악순환'

심우정 검찰총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46대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심우정 검찰총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46대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올해 8월까지 검찰 조직을 떠난 검사 수가 과거 연간 퇴직자 수인 100명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1년의 3분의 2가 겨우 지난 시점에서, 검사 현원(2,100명 내외)의 5% 가까이가 '검찰청 탈출'을 선택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요약하자면 사건 처리 부담은 갈수록 심해지는데 상대적 처우는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퇴직자가 늘고 그만큼 남은 검사들의 부담이 또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자 "형사 사건 대응 역량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검찰 안팎의 걱정이 잇따른다.

평검사 탈출 러시

최근 5년간 검사 퇴직 인원 추이. 그래픽=신동준 기자

최근 5년간 검사 퇴직 인원 추이. 그래픽=신동준 기자

30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퇴직 및 신규 채용 검사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검찰청을 떠난 퇴직 검사는 딱 100명을 채웠다. 2021년 이전 연간 70~100명이 나가던 추이를 반영하면 이미 평년 수준을 넘어섰다. 퇴직이 급증한 2022년(146명)과 지난해(145명) 수준에 이르거나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선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평검사들 퇴직이 늘었다. 10년 차 이하 검사 퇴직자는 2020년 21명, 2021년 22명에서 2022년 41명, 지난해 39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도 8월까지만 17명이다. 반면 최근 신규 임용 검사는 계속 퇴직자 수를 밑돈다. 빠져나가는 만큼 충원이 안 돼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 이상 검사 비중만 높아지는 '역피라미드 구조'로 가는 중이다.

검찰 3개월 초과 장기미제 사건 추이. 그래픽=이지원 기자

검찰 3개월 초과 장기미제 사건 추이. 그래픽=이지원 기자

검사 이탈 원인으로는 △대형 사건 파견 △재판 장기화 △복잡해진 형사제도 △검사의 사회적 위상 변화 등이 꼽힌다. 여러 이유가 얽혀 있어 콕 집어 해법을 찾기 어렵다. 일선 검찰청에서도 "한계에 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부·증권범죄합수부 등 일부 선호 부서를 제외하곤 일반 형사부 검사 수는 초라한 지경이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한 부서에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1명만 배치된 사례까지 있었다. 수도권의 한 평검사는 "실제 근무인원은 더 적어 초임 시절에 비하면 부서별 검사 수가 70% 아래로 줄어든 느낌"이라면서 "파견이라도 다녀오면 미제가 쌓이는데, 인력 조정이나 사건 재배당도 쉽지 않아 새 사건은 또 처리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 지난해 검찰의 3개월 이상 장기미제 사건 수는 수사권 조정 전인 2020년 수준을 뛰어넘었다.

'대형 인지수사 사건 쏠림' 현상은 검사 수급 문제를 더 부채질한다. 한 지방검찰청 간부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부 검사 명단이 그렇게 긴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면서 "주요 사건 파견 규모가 줄지 않아 생기는 부담이 계속 크다"고 했다. 다른 차장검사도 "공판중심주의 강화에 따라 수사검사가 직접 재판에 들어가야 하는 사건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개별 검사에게 "빨리 처리하라"고 닦달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평검사들은 "피해자 보호 조치를 비롯해 검사가 직접 챙겨야 할 업무가 점점 늘어난다"고 호소하고, 차장검사는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로 일관된 사건 관리가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한 재경지검 차장검사는 "개별 검사 독려로 해결하기엔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특단의 해법을 찾을 단계에 이른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피해자 도움 없인 수사 못 해"

검찰 일선의 위기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경찰·법원의 인력난과 겹쳐, 형사사법 체계 전반의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법조계는 경고한다. 복수의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이미 최근 경찰과 검찰 모두 변호인이 가져가는 증거를 판단하는 역할만 한다"고 꼬집었다. 고소·고발을 한 범죄피해자나 변호인이 직접 나서 증거를 수집·제출하지 않으면 사건 처리 속도가 한없이 늘어진다는 의미다. 사건 처리 지연은 결국 범죄 피해를 당한 시민들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심우정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 직후 '형사부 강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켜 현장 목소리 수렴에 나섰지만, 얼마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지는 의문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간 (고참 검사들이 임명되는) 중요경제범죄조사단 강화 등 방안이 언급됐지만, 지금 사태를 해결하기엔 부족했다"면서 "보직 부장검사들을 전면 활용하는 등 적극적 조치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기적으로는 2014년 이후 개정되지 않은 검사정원법 및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초당적 논의도 필요하다. 유상범 의원은 "검사들의 대규모 이탈은 범죄자들만 좋아할 소식"이라며 "여야도 검찰 정상화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준기 기자
강지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