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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요금 부메랑... '폭탄 돌리기'에 커지는 내수 부담

입력
2024.09.25 08: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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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부채 200조 돌파... 5년 새 57% 상승
공공요금 동결 기조에 공기업 부실 한계상황
전문가 "정치 고려 배제, 점진적 인상해야"

주요 공기업 부채 현황. 시각물=신동준 기자

주요 공기업 부채 현황. 시각물=신동준 기자

억눌러온 공공요금에 공기업 부실이 한계 상황에 다다르면서 정상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적자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가 장기화해 쌓인 부채는 향후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적기에 공공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정부는 2%대로 안정화하기 시작한 물가 상승률을 자극, 위축된 내수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로 고심하고 있다.

24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살펴보면, 지난해 한국전력공사 부채 총계는 202조4,502억 원대로 5년 전에 비해 57% 이상 증가했다.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은 5배가 넘는다. 한국가스공사(47조4,286억 원), 한국도로공사(38조3,391억 원), 한국철도공사(20조4,654억 원) 등도 같은 기간 부채가 25~50% 뛰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지만 제때 요금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 해 벌어진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기조는 고물가·고금리로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대선·총선 등에 대한 정치적 고려도 '공공요금 폭탄 돌리기'를 부추겼다. 누적 적자로 허덕이는 공기업들은 정부가 지급 보증하는 공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왔다.

공기업 부실은 국가신용도에 영향을 미치고, 시설투자 재원 부족은 결국 공공서비스 기반을 취약하게 할 수 있다. 내수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축적된 공공요금 인상분이 정상화할 경우 물가가 상승하고 실질소득이 감소해 소비 여력이 없어지면서 내수가 더 침체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에서 24일 전력량계를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에서 24일 전력량계를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면서 이미 일부 공공요금 인상은 시작됐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달부터 주택용 도시가스 요금을 6.8% 올렸다. 지난해 5월 이후 첫 인상으로, 가스 수요가 높아지는 겨울철 난방비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14조 원 수준 미수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 요금 상승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중교통, 수도 요금도 오른다. 서울시는 지하철 기본요금을 1,400원에서 1,550원으로 150원 올릴 방침이고, 경기도 버스 노사도 이달 초 준공영제·민영제 모두 기사 임금을 7% 인상키로 해 요금에 반영될 예정이다. 경기도와 부산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도 최근 상하수도 요금을 적게는 5%부터 많게는 9%까지 잇달아 올리고 있어 전국으로 인상 기조가 확대될 수 있다.

전기요금은 폭염이 지난 4분기 인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23일 또 동결돼 6개 분기째 현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정상화를 피력하나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 들어 전기요금이 50% 정도 인상됐다"며 "국민 부담이 얼마나 늘었는지와 한국전력공사의 재무구조, 에너지 가격 등에 대한 종합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은 공공요금 동결이 가계 부담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공요금을 이용해 물가를 억제해 왔는데, 원금에 이자를 더해 미래로 이연하면 결국 더 큰 비용이 든다"고 짚었다. 아울러 "국제 에너지 가격과 환율 동향 등을 살펴 점진적으로 공공요금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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