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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년 넘도록 이어진 금을 향한 인류의 끝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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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학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립됐습니다. 어려운 경제학을 익숙한 세계사 속 인물, 사건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으로 근무하는 조원경 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사로 읽는 경제’는 2주에 한 번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금 가격이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 중이다. 23일 기준 1돈(3.75g)에 42만 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달러 가치와 반비례하는 금의 가치는 이제 미국 기준금리가 인하된 후 추가 상승할지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 이미 많이 상승해 경기침체를 동반하지 않는 상승효과는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금 가격은 꾸준히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금은 구리 다음으로 인간이 오랫동안 사용한 금속이다. 금으로 대표되는 부를 이루려는 인간의 욕망은 전쟁과 무역으로 꽃을 피웠다. 화폐로서의 금화에 초점을 맞춰 금의 역사를 분석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금제품은 기원전(BC) 4550~4100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가리아의 바르나시 일대 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된 6K의 금제 장신구가 그 주인공이다. 이를 통해 인류가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금을 제련하는 기술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
BC 3100년 무렵 고대 이집트는 금 제련의 중심지였다. 동부 사막과 남부 누비아 지역에서 금을 생산했다. 이집트 신왕국 시대는 누비아 지역을 직접 통치하고 금광을 개발해 이집트의 금 보유량이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이러한 금은 이집트가 부를 축적하고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게 했다. 왕족과 귀족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금 장신구를 사용했다. 이집트인은 금이 태양신의 피부라고 믿었다. 파라오(왕)의 얼굴을 본뜬 황금 가면을 만들어 왕의 무덤에 함께 묻었다. 고대 이집트인은 페니키아인을 비롯해 무역 활동을 하는 데 금을 적극 활용했다. BC 2500~1700년 무렵까지는 은이 금보다 훨씬 귀했다. 당시의 많은 금 장신구가 은으로 도금되기도 했다. 영국의 이집트학자 존 리처드 해리스는 이집트에서는 은이 금보다 귀했다고 본다. 그는 BC 2000년대까지 은과 금의 교환비는 2:1로 추정했다. 이후 은의 가치는 하락해 BC 1069~664년에는 1:3까지 떨어졌다.
금을 화폐 목적으로 처음 사용한 건 리디아인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금과 은의 자연 합금인 호박금으로 만든 최초의 주화를 제조했다. 이는 지중해 지역의 표준 통화로 자리하게 된다. 성분은 금 55%, 은 43%, 구리 2%, 납과 철 소량이 포함됐다. 앞뒷면에 각각 사자를 새겼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가 처음 만든 금화는 파로스 연대기에는 아르고스의 왕 페이돈이 처음 만들었다고 나온다. 기원전 546년에 아케메네스 제국이 크로이소스를 포로로 사로잡았고, 아케메네스 제국도 동전을 만들 때 금을 사용했다. 리디아가 페르시아에 멸망한 이후에도 리디아의 화폐는 페르시아를 비롯해 그리스의 화폐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고대 로마의 화폐도 리디아 금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리디아 화폐를 세계 주화의 아버지라고 주장하게 된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는 금을 무역과 상업 활동에 주로 사용했다. 로마인은 지중해의 표준 통화로 자리 잡은 ‘아우레우스’와 같은 금화를 주조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금화를 교환 수단과 가치저장 수단으로 이용했다. 로마의 금화는 국제 상거래 발전에 큰 영향력을 미쳐 중세시대 내내 금이 지속 활용되는 계기가 됐다. 로마의 화폐제도를 계승한 비잔티움 제국 또한 콘스탄티누스 1세 때 주조된 ‘솔리두스’ 같은 금화를 화폐로 사용했다. 질이 좋아 여러 지역에 걸쳐 널리 활용했고 1,000년 이상 유통됐다. 이슬람권에서도 솔리두스에 상응하는 금화 ‘디나르’를 사용했다. 유럽에서는 13세기 이후 피렌체에서 주조된 피오리노, 베네치아의 두카, 1489년 영국 헨리 7세 때 만들어진 1파운드 금화인 소브린이 대표적인 금화다. 이탈리아·영국·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근대적 통화로 사용했다. 화폐로서의 금의 가치는 각국이 보유한 금의 양에 따라 결정됐다. 피렌체 공화국에서 주조한 금화인 ‘플로린’은 유럽의 표준 통화로 자리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5세기 무렵 춘추시대 말기부터 금화가 등장했다. 현존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조금화는 초나라에서 쓰던 영원(郢爰)금화이다. 해혼후의 무덤에서 전한 시기에 만들어진 수백kg이 넘는 4가지 종류의 금화가 발견됐다. 이 중 가장 흔한 형태는 금병(金餠)이라 불리는 동그란 형태의 금화다. 기린의 발을 본뜬 인지금과 말발굽을 본뜬 마제금, 금판 등도 발견됐다. 중국에서 주된 화폐는 동전이었고 금화는 주택의 매매 등 고액 거래에 이용했다. 이슬람의 황금기에서도 금 ‘디나르’와 금 ‘디르함’이 교환수단으로 등장했다. 이슬람 화폐 시스템은 금의 무게를 기준으로 했고,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널리 사용됐다.
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중세에 와서 연금술을 발달시켰고 그 당시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세 유럽 영주들의 세력 확장 야욕을 불타오르게 했다. 영주들은 연금술사에게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지금 생각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연금술은 화학적인 수단을 이용해 금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다. 이 같은 활동은 고대부터 이루어졌고 중세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금은 희소성에 의해 그 가치가 높아지는데, 금을 인공적으로 얼마든지 만든다면 하루아침에 그 가치가 떨어질 것이 뻔하다. 당시 사람들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연금술사의 노력은 1,000년 이상 계속됐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화학 기구를 발명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마르코 폴로의 모험이나 콜럼버스의 항해도 동양의 금을 구하려는 게 첫째 목적이었다. 근세 유럽의 발전도 금·은 무역에서 비롯했다. 16세기 중남미 침략을 시발점으로 19세기 북아메리카의 골드러시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세계무역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신대륙의 식민지에서 금과 은을 채굴했다. 여기서 축적한 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세기 캘리포니아, 호주,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금은 세계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 1873년에 독일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각 지방에서 만든 다양한 플로린 금화를 대체하기 위해 독일 마르크를 만들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금은 ‘금본위제(gold standard)’의 토대가 됐다. 1933년까지 많은 나라들이 대공황 때문에 금본위제를 포기하며 금화 생산을 멈췄다. 금본위제는 고정환율제였다. 예컨대 미국에서 금 1온스(28.349523g)가 35달러이고 영국에서는 금 1온스당 7파운드라고 하면, 양국 간 환율은 1파운드당 5달러가 되는 식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갈 무렵 등장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금환본위제를 특징으로 한다. 금환본위제는 미국의 달러화만이 금과의 일정교환비율을 유지하고, 다른 국가들은 달러화와 자국통화와의 교환비율을 정해 환율을 안정시키는 제도다. 금환본위제하에서 환율은 각국이 정한 달러화와 자국통화의 교환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각국은 마음대로 비율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제수지 불균형이 발생할 때 미세한 수준에서 비율을 변화시킬 수 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의 국제수지가 악화하고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붕괴한다. 1976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세계 주요국 대표들이 모여 합의한 새로운 국제통화제도로 킹스턴 체제가 등장한다. 변동환율제도를 특징으로 하고 각국이 외환의 수급에 따라 자율적으로 환율을 결정한다. 각국은 독자적 환율제도를 선택하고 환율변동이 심할 때는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순위 역시 언론에서는 금메달을 기준으로 정한다. 은이 아무리 많아도 금 하나를 앞서지 못한다. 그만큼 인류의 금을 향한 사랑은 유별나다. 각국의 외화보유액 상당 부분을 금이 차지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오늘날 금은 여전히 귀중한 가치저장의 수단이자 통화 수단으로 간주한다. 금은 투자 수단으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그 외에 전자공학, 의학, 항공우주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산업에서 널리 사용된다. 인류의 치명적인 금 사랑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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