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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 주역 지구당은 왜 20년간 부활하지 못했나

입력
2024.09.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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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정치 활동 담당했던 지구당
조직 운영 위해 막대한 비용 들어가
차떼기 사건 등 불법 자금 유통 통로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안이 2004년 3월 2일 정치개혁특위에서 통과된 뒤 이재오(가운데) 당시 정개특위위원장과 오세훈(왼쪽) 한나라당 간사, 장성원 민주당 간사 등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안이 2004년 3월 2일 정치개혁특위에서 통과된 뒤 이재오(가운데) 당시 정개특위위원장과 오세훈(왼쪽) 한나라당 간사, 장성원 민주당 간사 등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달 운영비가 최소 2,000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지구당 폐지로 절감되는 비용은 실로 막대하다."

2003년 11월 6일 '지구당 폐지'를 다룬 한국일보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실려 있다. 또 다른 기사에는 "선거가 시작되면 1주에 지구당 활동비가 최소 1억 원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시 지방에서 1억 원을 호가하는 20평대 아파트도 적지 않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지구당은 '돈 먹는 하마'였던 셈이다.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갔던 것일까. 지구당은 1962년 법적 근거를 갖춘 이후 정당과 지역구 주민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면서 정치적 이념이 같은 사람을 결집하는 역할을 맡았다.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사무실과 유급 직원을 두고 후원금 모금, 당원의 입·탈당, 당원 교육, 지역 행사 등을 주관했다. 지구당의 활동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지는 구조상 인건비와 임대료 등 각종 부대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불법 정치자금의 온상이기도 했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2톤 트럭을 동원해 기업으로부터 현금 823억여 원을 수수한 뒤 전국 지구당에 살포한 '차떼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역 토호세력이 후원금을 매개로 지구당과 유착했고, 심지어 지구당 위원장으로부터 공천을 받아 직접 기초의원이 돼 이권에 관여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지구당은 현역 정치인이나 정치 후보자의 선거조직 관리와 선거동원의 수단으로 이용돼 '사당화(私黨化) 문제'가 심각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고비용 정치에 불법 논란까지 더해지자 지구당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결국 정치권은 2004년 "고비용 저효율의 정당구조를 개선해 새로운 정치풍토를 조성하겠다"며 지구당을 폐지했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헌법재판소에 "지구당 폐지는 정당의 자유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헌재는 "지구당은 운영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었고 선거브로커의 활동 창구 역할을 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며 기각했다.

결국 지구당은 사라졌다. 하지만 지역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결국 각 정당은 이듬해 "정당의 자율성을 확대하겠다"며 법을 개정해 지구당의 역할을 대신하는 당원협의회(국민의힘)와 지역위원회(더불어민주당)를 만들었다. 다만 지구당처럼 후원금을 모금하고, 유급 직원을 고용해 사무실을 별도로 설치할 수 없어 당협위원장이나 지역위원장들은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겪었다.

지구당 부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과정에서 하급심 법원이 2013년 헌재에 당협 사무소 설치를 금지한 법에 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넣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헌재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부패가 완전히 근절되었고, 과거 지구당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당원협의회 사무소 설치를 허용할 만큼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정치환경이 전면적으로 변화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정당의 지역조직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기술 등을 활용해 얼마든지 지역민들과 소통할 수 있어 당원협의회 사무소를 설치할 필요성은 점점 적어지고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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