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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률 100 대 1... 샤넬보다 치열했던 '대출 오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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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뱅 주담대 되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6시 오픈런, 대환 9시 오픈런. 4일째인데 안 돼요. 되신 분 계시면 팁 좀 전수해 주세요.
지난달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라온 하소연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접수에 연거푸 실패했다는 경험담입니다. 오전 9시부터 아파트담보대출 신청을 받고 있는 케이뱅크도 '선착순 대출'을 노려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은행 대출은 영업점 방문 없이 신청 가능해 선호하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최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가계대출 관리를 목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인터넷은행으로 대출 수요가 더욱 몰렸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全) 금융권 가계대출이 4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고, 8월 한 달 9조8,000억 원이나 늘면서 당국이 '자율적 가계대출 규제'를 요구했거든요. 고객 불만이 쏟아지자 두 인터넷은행은 아예 "주택 구입 자금 대출 대상을 무주택자로 제한한다"며 대출 빗장을 걸어 버렸습니다.
"기시감이 든다." 최근 금융권 사람들의 세태 논평입니다. 이전에도 '대출 오픈런'으로 사달 난 적이 있었거든요. 갓 출범한 인터넷은행 토스뱅크에 '100만 대출 난민'이 몰렸던 2021년 10월 이야기입니다. '내 앞에 100만 명이 더 있다'는 대기표를 받고 망연자실해한 사람이 많았죠. 경쟁률은 무려 100 대 1이었습니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해 금융당국이 토스뱅크 가계대출 한도를 연간 5,000억 원으로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당국이 각 은행에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5~6%로 줄이라"고 엄포를 놓던 시기였습니다. '대출 중단'이라는 고육지책을 쓰던 은행도 있던 터라 대기줄은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 출범 9일 만에 토스뱅크 역시 "대출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팬데믹을 관통하던 2020년, 2021년은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의 해였습니다. 코로나19 생계자금 수요에, 낮은 금리를 노린 투자(또는 투기) 수요까지 몰려든 탓입니다. 빚내 집을 사지 않았던 사람이 자신을 자조적으로 칭하는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던 '대출 광풍(狂風)'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당국은 가계 빚 교란 주범으로 신용대출을 지목했습니다. 2020년 11월 당국은 △1억 원 넘게 신용대출 받은 고소득자에게도 투기 및 투기과열지구 주담대에 적용하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를 적용하고 △1억 원 넘게 신용대출 받은 이가 1년 이내 규제지역 주택을 사면 신용대출을 회수하는 등 규제를 강화합니다.
은행도 당국과 보조를 맞춥니다. 그다음 달 신한은행은 연말까지 신규 신용대출을 아예 막았고요. KB국민은행은 2,000만 원 초과 신용대출을, 하나은행은 모바일 신용대출을 중단했죠. 이면엔 '대출총량을 지키라'는 당국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고요.
효과는 있었습니다. 그해 12월 신용대출이 감소세를 보였거든요. 문제는 '반짝' 효과였다는 점입니다. 이듬해(2021년) 1월 은행이 대출 빗장을 거두자마자 대출 수요가 급증합니다. 가상화폐까지 호황이었던 데다 "받을 수 있을 때 받아 두자"는 '규제의 학습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죠. 2월엔 이사철과 맞물려 주담대까지 늘기 시작합니다.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 6조7,000억 원 중 주담대 증가액은 6조4,000억 원, 그중 전세대출 증가액은 3조4,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정부 대출 규제도 더욱 확대됩니다. '가계부채 증가율 4%' 목표를 제시했고요. 7월부터 투기지역 등 규제지역에 있는 시가 6억 원 초과 주택 구입 목적으로 대출받는 사람에게 DSR 40% 규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은행들은 즉각 '대출 조이기'에 나섭니다. 모기지신용보험(MCI)·모기지신용대출(MCG) 상품판매를 일시 중단해 소액임차보증금만큼 대출한도를 줄이거나, 전세 및 신용대출 우대금리를 줄이는 식으로요. 기억하시나요. 지난달 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 발언 이후 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했는데요. 그때 가장 먼저 들고나왔던 대책이 MCI·MCG 일시 중단이었습니다.
정부·당국에 은행까지 합심한 가계대출 총력전, 효과는 어땠을까요. 그해 7월 은행 가계대출 규모는 7월 기준 2004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 증가합니다. 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 시행을 앞둔 지난달 주담대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8조2,000억 원 증가했던 것처럼 '막차 수요'가 몰린 결과입니다.
고강도 대책이 이어집니다. 2021년 8월 당국은 은행에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당부합니다. 이어 같은 달 NH농협은행은 "11월까지 부동산 대출 중단"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립니다. 가계대출 연간 증가율이 당시 당국 목표(5~6%)를 넘어서자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대출 조이기 도미노는 계속됩니다. 우리은행, SC제일은행이 일부 대출을 제한한 데 이어,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줄였고요.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줄이는 곳도 등장했습니다. 삼성생명이 DSR 40%를 적용하는 등 보험업계도 동참했죠. 전세 보증금이 오른 만큼만 전세대출을 내주는 곳도 생겼고요. 맞습니다. '대출 중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도 시행하고 있는 조치입니다.
대출 중단 사태도 연말까지 이어졌습니다. 10월 6일 케이뱅크가 고신용자 대상 마이너스통장 발급을, 10월 8일 카카오뱅크가 중금리를 제외한 모든 대출을 중단했고요. 10월 29일 SC제일은행이 주담대 문을 닫았습니다.
지금과 다른 점은 당시 전세대출이 가계빚 뇌관이었다는 점입니다. 임대차 3법 시행 후 공급 감소 등으로 전셋값이 상승한 데다, 공기업이 보증을 서기 때문에 은행도 다른 대출 대비 쉽게 대출을 내주며 취급액이 증가했다고 해요. 그렇다고 전세대출을 중단해 버리면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죠.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서민·실수요자 대책 마련"을 주문하면서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서 전세대출은 결국 빠졌어요. 대신 은행 자율규제로 대신해요. 10월 27일 전국 17개 은행은 "전세계약 갱신 시 대출 한도를 '전셋값 인상분 이내'로 축소"하기로 합니다.
약발, 들긴 들었습니다. 그해 11월 서울 집값 상승세가 6개월 만에 소폭 둔화했고요. 이듬해(2022년) 1월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도 8개월 만에 감소 전환합니다. 11월부터 은행들은 차근차근 대출 규제를 원상복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인위적으로 금리를 올리다 보니 1금융권인 은행 이자가 2금융권보다 비싼 기현상이 나타났고요. 대출금리 대비 예금금리가 오르지 않으면서 "은행이 이자장사 한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부터 시장금리가 스멀스멀 오르고 있었다는 것도 투자심리를 꺾는 데 한몫했습니다. 팬데믹 때 급격히 풀린 유동성 탓에 미국 등 주요국 물가 오름세가 포착되자 '조만간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한 시장이 먼저 반응한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2021년 8월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합니다. 영끌, 빚투족이 받을 '빚의 역습'을 미리 경고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은행을 동원한 2021년의 가계대출 총력전, 총평은 어떠할까요. 최근 공개된 8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이런 평가를 내놨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과거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사례가 있는 데다…"
이어서 2021년과 흡사한 현재 가계대출 관리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금번 대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는 만큼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추가 조치가 필요할지 등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전문가들은 현재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요.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도 "시장을 잠재우기엔 한계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부동산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는 "포퓰리즘에 입각한 과도한 정책대출을 조정하는 한편, 은행 자율적으로 대출 정책을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도 "효과는 한시적"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 교수는 "은행에 주담대 위주의 가계대출 공급을 억제해 달라고 맡기는 정책이 지속되면 은행들은 금리를 인상해 수익 감소를 보존하려고 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은행이 주담대를 늘리는 만큼 자본을 더 쌓게 하는 선진국의 자본 적정성 규제처럼 "일관성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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