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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모든 위기의 시작"이라는 독일 극우, '동독의 결핍' 파고들었다

입력
2024.09.12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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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일 정치 전문가 2인
AfD, 왜 옛 동독에서 잘나가나
극우 정당, 주의회 선거 1위 차지

독일 튀링겐 주의회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에르푸르트에서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의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화면으로 알리스 바이델 AfD 중앙당 공동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다음 날 선거에서 AfD는 1당을 차지했다. 에르푸르트=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튀링겐 주의회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에르푸르트에서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의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화면으로 알리스 바이델 AfD 중앙당 공동대표의 모습이 보인다. 다음 날 선거에서 AfD는 1당을 차지했다. 에르푸르트=로이터 연합뉴스

"독일이 민족적으로 순수한 국가라는 망상은 사라져야 합니다." (게르하르트 바움 전 독일 내무부 장관)

"대중 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와 극단주의자들의 논리가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나 모리나 독일 역사학자)

독일 연방의회 75주년 기념식이 열린 10일(현지시간) 본회의장 연단에 선 이들은 이렇게 외쳤다.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에 대한 비판이었다.

독일 민주주의 발전사를 축하하기보다 불편한 말을 쏟아낸 건 AfD 견제가 그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반(反)이민을 내세우는 AfD는 최근 튀링겐 주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32.8%를 받으며 1당에 올랐다. 2013년 창당 이래 첫 승리였다. 같은 날 작센주 선거에서는 2위(30.6%)에 그쳤지만 1당 기독민주당(CDU·득표율 31.9%)과의 차이가 미미했다.

AfD 기세가 무섭게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유독 성과가 컸던 튀링겐·작센이 모두 옛 동독에 속했던 점과는 어떻게 연결될까. 이를 살펴보고자 한국일보는 독일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튀링겐주 에르푸르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안드레 브로독츠 교수, 트리어대에서 AfD 영향력 관련 연구를 이끄는 안나-소피 하인체 박사가 참여했다.

AfD 관련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안드레 브로독츠(왼쪽 사진) 에르푸르트대 정치학 교수와 안나-소피 하인체 트리어대 박사. 에르푸르트대·트리어대 제공

AfD 관련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안드레 브로독츠(왼쪽 사진) 에르푸르트대 정치학 교수와 안나-소피 하인체 트리어대 박사. 에르푸르트대·트리어대 제공


"'이민만 없으면 다 해결... '단순한 논리'가 먹혔다"

'AfD가 이민에 대한 독일인들의 두려움·거부감을 자극한 것이 주효했다'는 일반적 분석에 두 전문가도 동의했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프라 디맵이 지난 6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이민을 꼽은 이들(44%)이 가장 많았다. AfD는 "우리는 '독일인'으로 남아있기를 원한다"(AfD 중앙당 홈페이지)며 공공연하게 이민자를 배척한다.

브로독츠 교수는 "AfD는 '이민은 독일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기의 시작'이라며 사안을 단순화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AfD는 '이민자를 받지 않으면 독일에는 위기가 없을 것'이라는 단순한 해법을 제시한다.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해법이지만 유권자 상당수는 여기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AfD 지지가 많아지면서 '숨은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게 된 측면도 있다. 브로독츠 교수는 "공적 영역에서 극우의 공간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AfD가 올해 초 발표한 '재이주를 위한 7가지 요구사항'. AfD가 말하는 '재이주'란 '법의 지배 와 법률에 따라 본국을 떠나야 하는 외국인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뜻한다. AfD 제공

AfD가 올해 초 발표한 '재이주를 위한 7가지 요구사항'. AfD가 말하는 '재이주'란 '법의 지배 와 법률에 따라 본국을 떠나야 하는 외국인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뜻한다. AfD 제공

연립정부를 구성한 사회민주당(SPD)·녹색당·자유민주당(FDP)을 심판해야 한다는 정서를 전통적인 보수 정당인 제1야당(CDU)이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것도 AfD 득세 이유 중 하나다. 하인체 박사는 "보수 정당인 CDU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2005~2021년)하에서 좌경화됐다는 데 실망한 이들이 많다"며 "CDU가 오른쪽으로 입장을 바꿔도 AfD에 빼앗긴 유권자를 되찾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인체 박사에 따르면 'CDU 파괴' 또한 AfD 목표 중 하나다.

정치 불신·비주류 정서·서독과의 격차... AfD 득세로

AfD의 지지세는 동독에서 유독 강하다. 지난 6월 유럽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 당시 AfD가 전국에서 받은 득표율은 15.9%였다. 반면 튀링겐·작센에서 받은 득표율의 2분의 1 수준이다. 두 전문가는 그 이유를 '동독의 결핍'에서 찾았다. 하인체 박사의 분석은 이렇다. "①동독 주민들은 SPD, CDU 등 전통적 정당에 대한 동질감이 낮고, ②독일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족은 높다. ③여기에 서독 지역과의 정치·사회·경제적인 격차에 따른 박탈감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 대해 독일 빌트는 '유럽 선거, 독일 분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과거 동독에 속했던 지역에서 AfD의 강세가 두드러졌다는 내용이다. 빌트가 독일 통신사 dpa를 인용해 기사에 실은 지도에서 검은색은 CDU와 SPD, 파란색은 AfD에 대한 지지를 뜻한다. 빌트 캡처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 대해 독일 빌트는 '유럽 선거, 독일 분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과거 동독에 속했던 지역에서 AfD의 강세가 두드러졌다는 내용이다. 빌트가 독일 통신사 dpa를 인용해 기사에 실은 지도에서 검은색은 CDU와 SPD, 파란색은 AfD에 대한 지지를 뜻한다. 빌트 캡처

그의 분석은 여러 조사가 뒷받침한다. 독일 알렌바흐연구소는 지난달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보는 동독 주민(54%)이 서독 주민(27%)의 두 배'라는 조사를 내놨다. 지난 1월 독일 예나대에서는 '서독 주민은 10명 중 1명도 채 느끼지 않는 정서적 소외감을 동독 주민들은 5명당 1명꼴로 느낀다'는 조사가 발표된 바 있다.

브로독츠 교수는 사회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동독에서 '현상 유지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데 주목했다. "동독 붕괴 이후 주민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일당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를 모두가 바랐던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들에게 이민, 기후 위기 대응은 새로운 변화였다. AfD는 그러한 변화를 막아줄 수 있다는 인상을 줬다." 다만 AfD에 대한 동독의 지지를 나치 독일 또는 공산주의에 대한 갈망으로 보는 일각의 해석에 대해 브로독츠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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