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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예고 글' 본 다수 피해자에 대한 협박 혐의 공소기각은 위법

입력
2024.09.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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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법원 "피해자 특정 힘들어" 공소기각
항소심 "불특정 다수 대상 특성 고려해야"
형사소송법 따라 파기 후 1심 법원으로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흉기난동 예고 글'로 인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부 협박죄가 공소기각된 판결은 위법하다는 항소심 판단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범행 특성상 추상적으로 피해자를 적시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2부(부장 엄철)는 위계공무집행방해, 협박 등 혐의를 받고 있는 박모씨의 1심 판결이 위법하다며 10일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했다. 형사소송법 366조에 따르면, 공소기각이 법률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면, 사건을 원심 법원에 환송해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협박 혐의 관련 일부 공소사실에 대한 기소를 무효로 본 점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지난해 8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특정 지역 출신 사람들을 살해하겠다는 취지의 흉기난동 글을 올렸다. 이 글이 알려지자 난동을 막기 위해 경찰관 9명이 현장에 출동했다.

1심 재판부는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와 게시물을 보고 최초로 신고한 피해자 A씨에 대한 협박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보호관찰, 120시간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하지만 A씨를 제외한 게시물을 열람한 다른 피해자는 특정되지 않았다며 협박 혐의 관련 일부 공소사실에 대한 기소를 무효로 봤다. 이 혐의는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는데,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을 경우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근거가 됐다.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검사는 협박죄의 공소사실을 구성함에 있어서 이 사건 범행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특수성을 고려해 다소 예시·추상적으로 피해자를 기재했다"면서 "그러한 기재는 범행의 특수성상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범행의 불법성은 '묻지마식 강력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현실에서 전통적 협박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경우"라면서 "추후 처벌 강화와 반의사불벌 규정 적용 배제 등이 입법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실무적 해석을 통한 규율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범행에도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특정돼야 한다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협박죄는 검사의 업무 과중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다수 피해자가 존재하는데도 확인할 수 있는 일부가 처벌을 불원해 피고인이 처벌을 면할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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